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요즘 세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을 보면서 가끔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부러운 것도 있고 안타까운 것도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지금에 비해 많은 것이 불편했다. 휴대전화는 물론 유선전화도 드물었고, 냉장고도 없었으며, TV도 동네에서 몇 집뿐이었고, 상수도도 없었다. 이동수단은 오로지 두 발이 전부였고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등·하교를 했다. 놀이터는 벼 베기를 끝낸 논과 주변의 산들이었다. 약속시간에는 30분 이상 기다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인터넷은 모든 것을 알려준다. TV나 신문 대신 손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접한다. 근처의 맛 집도 5분도 안되어 찾아낼 수 있다. 어릴 적 1년에 한두 번 먹었던 통닭은 30분 이내에 맥주와 함께 집에 도착한다. 편리한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편리해진 만큼 더 행복해졌을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졌는데 왜 그런 것일까? 아마도 편리함 대신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고, 어쩌면 그것들이 더 소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즘 가습기 살균제와 미세먼지가 사회문제의 큰 화두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는 올해 들어서 새롭게 대두된 것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대기업 유공(현재 SK케미칼)이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시작됐고, 미세먼지는 1930년대 화력발전소가 생기면서 예고된 일이었다.

청주시가 미세먼지 농도가 높고 유해화학물질 배출 1위가 된 것도 경제성장 정책으로 무분별하게 외국계 기업을 유치하면서 예상할 수 있었던 문제였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편리해진 생활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대신 많은 것을 잃게 했다. 약속을 정하고 다음날 1시간씩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만, 기다리면서 느꼈던 기대감과 초조한 마음은 없어졌다. 1초의 쉴 틈도 주지 않고 카톡으로 사랑의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한자 한자 정성들여 편지를 쓰면서 몇 십번을 곱씹는 애절한 마음과 우체통 앞에서의 무지개 같은 설레임은 사라졌다.

건조한 날 집안을 보습해 줄 가습기가 생겼지만 더불어 피해자들도 생겨났다. 언제나 소고기, 닭고기를 먹을 수는 있지만 광우병, 구제역, 조류독감을 걱정해야 한다. 아이들이 10리가 넘는 길을 걷지 않아도 되지만 등·하교 길은 더 불안하고 사고는 더 많아졌다. 컴퓨터와 화학제품이 주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지만 유해화학물질가스라는 폭탄을 안고 살아야 한다. 햄버거, 피자, 통닭 등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넘쳐나지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는 오히려 찾기 힘들다.

기술의 발달과 이로 인한 생활의 편리함 자체가 원인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변화와 영향에 대하여 별다른 고민과 더 생각함 없이 받아들이고, 오직 경제성장만을 부르짖는 정치인들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패스트푸드가 없는 불편한 삶을 자처하는 국민행복지수 1위 부탄왕국의 ‘오래된 미래’가 부럽다. 부탄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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