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내가 당직하는 곳은 시 외곽지역에 있는 국가기술양성소로서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는 절해고도와도 같다. 산 입구에 지은 탓도 있으나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할 수 없다.

지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던 아내가 나를 버리고 먼저 저세상으로 가버리면서는 모든 게 귀찮고 살아갈 의욕마저 떨어지기 시작했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거실에 나와 서성일 수도 없었다. 아들 내외 눈치 보여서다. 한때는 혼자 편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남들은 사정도 모르고 아들만 불효자식 만들 것 같아 그리할 수도 없었다.

내 처지를 심각하게 느낀 옛 직장 동료 서 과장이 그렇게 밤잠을 못 자면 밤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어떠냐고 해 지금의 당직만 전담하는 곳을 구했다. 집에서는 하얗게 밤을 지새우던 때가 많았으나 이곳에 온 이후로는 잠도 잘 오고 늘 머리를 맴돌던 아내 생각도 조금씩 엷어지기 시작했다.

연금의 절반 정도 되는 당직비가 매달 통장으로 들어온다. 나는 그 돈으로 손자들 용돈도 주고 뭐든지 사달라고 하면 모두 사주었다. 지난달에는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손자가 친구는 100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려서 부럽다고 해 같은 자전거를 사 주었다. 그 일로 손자는 제 아비에게 되게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내가 당직을 시작한 이후로는 아들 내외 얼굴 마주하는 날이 거의 없다. 나는 집에서 오후 5시에 출근하고 아침 9시에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니 항상 혼자 생활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런 나를 두고 자식들은 그것(경비직) 하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 없으니 그만두라고 성화다.

밤에 당직만 하는 것이니 과거 경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력서도 근무기관에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업체에 내는 것이어서 근무처에서는 내 경력을 알지 못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무엇을 했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그렇게 근무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직원들 퇴근 시간 30분 전에 출근하여 총무과에서 당직일지 등을 받고 전 직원이 퇴근하고 나면 문단속, 그리고 보안장치만 세팅하면 끝이다. 이번에 소장으로 승진해서 온 사람은 여자였는데 너무 까칠하다는 소문을 몰고 왔다. 당직실 앞에 지문인식기가 있어서 초과근무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꼭 지문을 찍어야 한다. 여덟 시 이전에 출근하는 직원은 출근과 동시에, 야근하는 직원은 퇴실할 때 꼭 지문 찍으러 들른다.

“아니, 본청에서만 있다가 온 사람이 뭘 안다고 그 난리야?”

“우리 양성소는 산 초입에 있어서 도둑놈이 들어올 수도 없어요. 가져갈 물건도 없고, 그런데 무슨 CCTV를 열 대나 더 달아. 그리고 전에 있던 것도 모두 천만 화소 고화질로 교체했다잖아?”

“그래, 총무과에서도 공사하는 날 그 사실을 알았다는 거야. 아무리 기관장이라고 해도 담당 부서와 협의는 거쳐야 하는 것 아냐?”

직원들을 달달 볶든 말든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주 토요일 10시쯤 되어서다. 당직자는 금요일 오후에 들어오면 월요일 아침이나 되어야 나갈 수 있다. 날씨도 좋고 해서 화단에 피어나는 꽃구경을 하고 있는데 소장 차가 정문을 향해 오는 것이 보였다. 차 안에는 무려 네 명이나 타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정어머니와 여동생들이었다. 소장의 의자에 돌아가며 앉아보는가 하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마치 브리핑하는 듯한 모습은 개선장군같이 보이기도 했다. 나는 따라다니며 문을 열어주고 닫는 일을 해야 했다. 어느 정도 자랑을 하고서는 점심을 먹으러 간다며 식구들을 데리고 밖으로 잘 나가다 말고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뒤로 획 돌아선다.

“아저씨! 뒤에 넓은 주차장이 있는데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세우면 어떡해요. 당장 치워요.”

비수였다. 일주일 전에 들은 말이지만,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이 좋은 날씨에 당직실에만 들어 앉아있으려니 몸이 근질거린다. TV 버튼을 눌렀다. 카네이션 꽃을 단 노부부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클로즈업되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먹는 모습도 보였다. 이곳으로 오겠다고 하는 것을 오지 말라고 했는데 꽃다발을 든 손자를 선두로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여섯 명이 들이닥쳤다. 갑자기 당직실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각자 준비한 선물을 내놓는다. 며느리와 딸은 준비해온 음식을 당직실 앞에 자리를 깔고 차린다.

“아버님! 도련님이 여자 친구 데리고 온다고 했어요. 청주 사람이라고 하네요. 이번에는 결정했으면 좋겠네요.” 막내아들은 부산에 있어서 자주 오지 못한다. 그 녀석만 짝을 이루면 내 임무는 끝이 나는데….

“아버지! 저도 왔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언제 왔는지 막내아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여자 친구의 손에는 꽃다발도 들려있다.

“그래, 오지 않아도 되는데 무엇하러 왔어?”

“아버지 제 여자 친구예요. 인사드려.”

“안녕하세요. 아버님 첫인상이 무척 좋으세요.”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왔구먼.”

소장이 공사 업자인 듯한 사내를 앞세우고 후관을 향해 오는 게 보였다.

“아니, 아저씨! 여기가 무슨 유원지에요. 이곳에서 고기나 굽고, 더구나 술까지 마셨어요. 근무시간에….”

그 소리에 막내 여자 친구가 기절초풍하고 일어선다.

“아니, 엄마!”

“네가 여긴?” 놀라기는 소장도 마찬가지다.

“오늘 춘성씨 가족들 처음 만나는 자리야! 근데 엄마는?”

“나 여기 소장이야”

“언제부터?”

“이번 달부터”

“그럼 말을 했어야지.”

소장의 날 선 음성이 바람을 타고 기분 좋게 날아오던 라일락 꽃 냄새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굽던 막내가 벌떡 일어선다.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정희씨 어머님 아니세요?”

“강 검사? 아니 내 사위!”

“저 사위 되겠다고 약속한 적 없습니다. 정희 씨와의 교제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누가 검사 아니라고 할까 봐서인지 녀석의 까칠한 성격은 언제 어디서든 참을 줄을 모른다. 이 해괴한 만남에 모두 어안이 벙벙하다. 이 위기를 넘겨야 했다.

“소장님도 앉으세요. 언제 날 잡아서 정식 인사는 드리기로 하고”

“아, 네. 저는 일이 있어서…. 맛있게 드세요. 사위 많이 먹게. 사장어른 조금 전엔 정말 죄송했습니다.”

소장이 업자를 데리고 종종걸음으로 빠져나간다. 막내 아들의 시뻘게진 얼굴이 안절부절못하는 여자 친구 정희 얼굴에 조금씩 파묻혀 들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내게는 마냥 순진하고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