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충북대 평생교육원 수필 창작반이 추진하는 문학기행에 오래만에 참여하고 싶었다. 이유를 든다면 천추에 빛나는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의 필적과 님 의 침묵으로 대표되는 만해(萬海) 한용운 문학관, 푸른 숲길의 향기 그윽한 천리포 수목원, 그 이름만 들어도 6월의 푸른 숲 향기와 거룩한 뜻이 담긴 곳이기에 늘 가고 싶었던 곳이다.

이른 아침 관광차에 오르니 문우들의 낯익은 밝은 표정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져 선입감부터 정감이 묻어난다. 달리는 차속에서 차례로 이어지는 자기소개는 인연(因緣)을 주제로 하란다. 더하여 ‘님 의 침묵’을 낭송 하니 가보고 싶은 마음을 더욱 부채질했다. 오늘 만난 것도 깊은 인연인데 살아가는 인생길에 잊지 못할 인연이 이보다 더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선현(先賢)의 혼과 예술의 흔적을 찾아가는 마음을 공유를 하면서 오늘 하루에 인연의 꽃을 마음껏 피워보리라.

사람은 살아가면서 흔적을 남긴다고 한다. 시인은 시로서 말하고 글 짓는 문인은 글을 남긴다. 또 화가는 그림으로, 서예가는 글씨로서 삶의 자취를 남긴다. 아브라함 링컨은 잡초를 뽑고 꽃을 심다간 사람이라고 미국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우리의 삶도 꽃을 심다 떠난 인생길이 되었으면 싶다.

첫 방문지는 충남 예산에 추사선생의 고택과 기념관이다.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봉이라 평가받으며, 독창적인 추사체 글씨가 고택에 들어서자 눈앞에 다가온다. 기둥 곳곳에 힘차게 꺾어 쓴 친필은 보는 순간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추사선생은 시(詩), 서(書), 화(畵)에 두루 능했으며, 한국 금석학(金石學)창시자로 전각(篆刻)에 뛰어났다. 쓰던 여러 모형의 낙관(落款)을 보면서 다재다능한 위대한 예술가의 혼이 깃든 고택을 돌아보면서 더욱 뜻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다음은 애국의 얼이 깃든 홍성 만해 한용운선생의 문학관이다. 만해문학 체험관, 생가 사당, 민족시비공원을 둘러보면서 불교개혁 이론서, 유심창간호, 님의 침묵 초판본 등 유물을 보면서 일생을 항일 독립운동과 불교문학 사상개혁을 위한 거룩한 선생의 애국정신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의 귀감이 되리라.

굴밥으로 이름난 명가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파도가 출렁이는 바닷가를 달려 천리포 수목원을 찾았다. 표를 끊고 입장해 숲속을 걷다보니 민병갈(閔丙渴) 숲 설립자의 게시판이 눈앞에 보인다. 한국을 한국 사람보다 더 사랑한 푸른 눈의 한국인이라 크게 써 붙인 그의 약력을 읽어보면서 어찌 우리민족은 자연 사랑의 혜안이 외국인만 못할까하는 자성의 마음이 들었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던 1945년 주한미군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했다. 그의 자연사랑은 마침내 천리포 수목원을 조성해 많은 수종을 육성한 공로로 대통령이 수여하는 금탑산업훈장까지 받은 그의 빛나는 업적이 게시판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82세로 한국 땅에 묻힌 산림애호가의 일생을 생각하며 숲속을 걸었다.

숲속에 이는 바람은 시원했고, 맑은 공기와 푸른 숲속의 향기는 지친 내 몸과 마음의 피로를 훌쩍 날려 보냈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수목 중에서 호랑가시나무, 목련, 동백꽃 등 잘 아는 나무도 있지만 알듯 말듯 까마득한 식물이 대부분이다. 숲 해설가의 설명을 듣기 위해 열심히 따라갔지만 어찌나 빠른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6월의 따가운 태양아래 시원한 숲길을 걸으며 힐링을 즐기다 떠나기를 아쉬워하며 차에 올랐다. 돌아오는 차속의 음악을 들으며, 오늘의 뜻 깊은 일정을 곰곰이 생각하며 문학기행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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