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15세 된 소년이 6월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먼 황토 길을 걷고 있었다. 평안남도 양덕에서 출발한 이 소년의 목적지는 평양이었다. 소년의 수중에는 그때 돈 2원과 평양의 어떤 약품 판매회사 사장에게로 가는 소개장이 있을 뿐이었다. 양덕에서 평양까지는 280리, 그는 기차 삯이 모자라 80리길을 걸어가기로 했던 것이다.

이른 새벽 어머님이 정성껏 만들어 주신 도시락을 받아들고 동생들과 헤어져 집을 떠난 그는 밤차를 타고 평양에 와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그의 수중에는 총재산 2원 중에서 20전이 남더라고 한다. 그는 취직을 했다. 새벽부터 자정에 이르기까지 고된 일을 해야 하는 각고(刻苦)의 10년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성실성은 얼마가지 않아 경영자의 인정을 받았지만 그로 인한 동료나 윗사람의 질시(嫉視)와 학대는 정말로 견딜 수 없는 곤욕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밤에는 강습소에 나갔고 남모르게 책을 읽어 약종상시험(藥種商試驗)에도 합격했다. 그렇게 해서 10년 만에 그는 독립할 수 있었다.

처음 3원의 월급을 받을 때부터 매달 절반씩을 꼬박꼬박 저축한 돈과 퇴직금으로 점포를 벌이고 ‘대일약방’의 주인이 된 것이다. 10년간의 체험과 지칠 줄 모르는 의욕으로 그의 약방은 번창 일로를 치달았다.

그러나 2차 대전과 6·25동란은 다시 그의 운명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고 말았다. 가족들의 손을 끌고 정처 없는 피난길에 올라 충남 공주에 이르렀을 때는 신병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기까지 했었는데 지방 유리들의 도움으로 그곳 면사무소의 임시 서기의 일자리를 얻어 겨우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머뭇거리지 않고 대전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길거리에 노점을 벌였다. 물론 ‘대일약방’이었다. 이 불운에 지치지 않고 과감하게 운명과 싸워온 그 날의 소년이 ‘한일 약품’의 설립자 우대규 사장이다.

그는 불운으로 점철된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자신과 인내, 그것만이 불운한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전 재산이었다. 그는 이렇게 회고 한다.

“만일 운명이 나로 하여금 시련의 선물을 받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이를 악물고 운명에 도전하는 용기를 갖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디쯤 떠밀려 가 있을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과거는 잊으라”고 한다. 과거에 얽매이면 마음의 자세가 후향적(後向的)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날의 빈곤과 굴욕, 각고의 생활을 에너지로 승화 시킨다는 것 또한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현대그룹의 창업자이신 정주영 회장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시련을 딛고 일어선 자가 강(强)한 자(者)가 아니다. 강(强)한 자(者) 이기에 시련과 곤욕을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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