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행복나눔협동조합대표이사

“한 학기 동안 수고 좀 해줄 수 있지?” “예, 걱정 마십시오.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강의 자료를 시간 전에 준비해 놓겠습니다.” 큰 키로 인해 좀 야위어 보이는 학생은 늘 그랬던 것처럼 시원스럽게 말하고는 ‘씨익’ 웃는다.

그 학생은 2년 전에 나에게 회계학을 배운 학생이다. 회계학이 그리 만만한 과목이 아니다 보니 내 나름대로 쉽게 가르치려고 많은 노력은 했다. 그러나 학생 입장에서는 꽤나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함께 간 베트남 출장 내내 그 학생은 나를 어려워 했다.

보름간 함께 생활하면서 바라본 그 학생은 참 성실했다. 함께간 많은 출장자들의 자질구레한 요구사항을 불평 한마디 없이 잘 처리해 주었다. 베트남에서 출장을 마치는 날, 헤어지기가 서로 아쉬워서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구동성으로 한 말은 “00학생 때문에 우리 모두 어려움 없이 출장을 잘 마쳤다”는 것이다.

첫 수업이라 간단하게 과목소개를 한 후 강의를 하려고 하니 수업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질 않았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00학생!”하고 부르니 조용하다. 다시 “00학생 안 나왔나?”하니 그제야 한 학생이 “00이 어머니께서 눈길에 미끄러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을 갔다가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미리 나에게 전화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경황이 없어서 그랬나?”하며 서둘러 수업준비를 하려니 컴퓨터까지 말썽이다.

“가만히 있어봐라, 00학생은 집이 청주가 아닌데, 그럼 아직도 청주에 안 왔다는 이야긴가? 아니면, 어머니께서 청주에 오셨다가 낙상을 당하셨다는 이야긴가? 그래도 그렇지 10여초면 나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을 텐데. 내가 그를 너무 믿었나…“ 잠시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그에 대한 신뢰가 실망감으로 변한다.

수업준비가 거의 끝나갈 무렵 00학생은 얼굴이 잔뜩 상기된 채로 강의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얼른 앞으로 나와 강의 준비를 도와주는데 급하다보니 자꾸 실수를 한다.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가려 하니 그 학생은 머뭇거리며 나에게 왔다. “교수님 오늘 정말 죄송합니다. 등굣길에 어느 아주머니가 갑자기 눈길에 넘어지셔서 그분을 모시고 가까운 병원까지 갔다가 오느라 늦었습니다. 수업준비를 제대로 못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 그랬구나! 그럼 그렇지. 자네가 그럴 리가 없지. 참 잘했네. 당연히 사고당한 사람을 도와주어야지. 그 아주머니 상태는 어떤가?”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병원에 모시고 가는 도중에 가족하고 통화가 되어 저는 병원까지만 모셔다 드리고 바로 학교로 왔습니다.” “잘했네. 그리고 잠시지만 내가 자네를 의심했던 점 진심으로 사과하네.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수업 안 들어와도 되네. 사람이 먼저지 수업이 먼저인가?” 학생의 손을 ‘꼬옥’ 잡으니 따뜻한 온기가 추운 내 몸을 모두 녹이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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