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행복나눔협동조합 대표이사

“장로님, 꼭 시간을 내어 주셔야 해요. 교장 선생님도 뵙고 싶다고 하세요. 제가 장로님 칭찬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그런지 그 얌전하신 교장선생님께서 장로님을 한 번 뵈었으면 하시네요. 호호호.”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권사님의 전화다. 그 권사님은 지역에서 상당한 유명세를 타고 계신 시인이자 초등학교 방과 후 선생님이시다. 예쁜 얼굴만큼이나 마음이 예뻐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출중해 백일장에 참가하는 학생들이면 거의 상을 받아 온다. 나와는 교회신문을 함께 편집하면서 알게 돼 이제는 같은 교회 교인으로써 또 문학 동인으로써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작년 일이 됐다.

하루는 그 분이 교회에서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넨다. “장로님, 00선생님 아시죠?” “예, 초등학교 동기동창입니다만.” “제가 나가는 학교 교감선생님이신데 우연한 기회에 두 분이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지역이 참 좁긴 좁아요.”

그 후 몇달이 지난 후였다. “장로님, 안녕하세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서 전화 드려요. 이번에 저희학교에 000교장선생님이 새로 부임을 해 오셨는데 00교감선생님과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라고 하시네요. 그래서 장로님 이야기를 하니 기억이 난다고 하세요.” “아, 그래요. 저도 이름을 들으니 희미하지만 기억이 납니다.”

베트남 출장 보고서를 쓰다가 보니 벌써 약속시간이 다 됐다. 부랴부랴 책상정리를 하고 식당으로 달려갔다. 약속한 세분은 이미 도착해 환담 중이다. 악수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으나 쑥스럽고 어색하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도 남녀관계라 그런지, 아니면 너무 오랜 세월로 인해 보이지 않는 막이 생간 탓인지….

음식을 먹으며 000교장 선생님을 자세히 보니 그 옛날 예쁜 소녀의 얼굴이 많이 남아 있다. 마치 세월까지도 그녀를 비켜간 듯 단아한 모습이 그대로이다. “언니가 한 분 계셨죠?” “어머, 어떻게 그것을 기억하세요. 난 아무것도 기억이 없는데. 언니는 포항에 살고 계셔요.” 그 후 우리의 타임머신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세분 동기동창님들! 저의 초대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왕 시간을 내셨으니 잠시만 시간을 더 내어 주세요. 제가 맛있는 차까지 대접하겠습니다” 하며 시인은 앞장을 선다. 향긋한 커피 향이 우리 주위를 서서히 감싸 안을 때, 나는 창밖을 통해 가물가물 피어나는 봄 아지랑이 속에서 자그마한 키, 하얀 얼굴을 한 소녀가 한 아름의 꽃을 들고는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