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미호천의 지천 백곡지 상류 토종물고기 보고(寶庫)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백곡천 합수부에서 백곡천을 따라)

▲ 백곡면 사송리 사정교 아래 백곡지로 흘러들어가는 물길이 S자형으로 굽이져 유속이 느리고 잔모래가 많아 미호종개 서식 환경이 갖춰졌다.

둑 높이기 등 4대강 사업으로 서식 환경 파괴

최초 서식지 하류에서 성어부터 치어까지 발견

진천군 공원화 사업에 앞서 생태조사 선행돼야

들녘의 벼가 익어가고 있는 모습이 흡사 종이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놓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마술 같은 힘을 보는 순간들이다. 9월의 마지막 날답게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은근한 초가을 햇살이 들녘에 노란빛을 더해주었다. 빛은 들과 산의 녹색과 어우러져 연두 빛이 되기도 하고 병아리 색을 띄기도 했다.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백곡천과 미호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 답사는 미호천의 중요 지천 중 하나인 백곡천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구곡리 합수부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문백면 장월리, 진천읍 신정리, 진천읍 읍내리, 벽암리를 따라 건송리 백곡저수지(백곡지)에 다다른다. 저수지까지를 백곡천의 본류로 지정하고 있는데 총 11.5km이며 유역면적은 126.7km다. 이 구간의 절반은 차량으로 이동해야 했고 절반은 걸어서 답사했다. 많은 구간이 하천정비를 위한 제방공사를 해 구불구불한 실개천의 모습을 잃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미호천 유역에서 멸종됐을 것으로 추정됐던 천연기념물 제454호 미호종개가 2007년 백곡지 상류 석현리에서 발견됐었기 때문에 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미호천 지킴이 임한빈(54)씨는 “백곡천 제방둑 높이 공사로 2007년의 백곡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미호종개가 발견됐던 장소 역시 하천의 성질이 많이 변했다”고 털어 놓았다.

실제 현장에 도착해보니 변했다는 말이 실감났다. 제방 둑이 높아 둑에서는 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풀숲을 헤집어야 겨우 물이 보였고 물위에서는 오리들이 헤엄치고 있었고 제방 둑 공사로 잔모래가 많았던 하천은 돌무더기 하천으로 변해 있었다. 유속이 느리고 잔모래가 있는 맑은 물에서 서식할 수 있는 미호종개가 도저히 살수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오래전 진천군이 세워놓은 푯말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이 역시 길가가 아닌 둑 중간쯤에 박혀 풀숲에 우거져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볼 수 없을 정도다. 이미 미호종개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하천의 형질이 변형된 것이다.

4대강 사업의 일환이었던 백곡저수지 둑 높이 및 백곡천 제방정비공사 사업은 한국농어촌공사 진천지사에서 2012년 12월까지 수자원 확보, 재해예방과 하천 생태계 보전을 이유로 사업비 599억원을 들여 제방을 2m 높이고 도로·교량을 건설한 것이다.

공사를 반대했던 금강유역환경회의는 2011년 이 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대략 다섯 가지로 지적한바 있다. 첫째 수심이 깊어져 진흙 등 퇴적물이 증가해 미호종개 서식지가 훼손된다는 점, 둘째 공사를 강행 할 경우 주택 9가구와 토지 13만㎡가 수몰돼 안개일수가 증가하고 농작물 수확량이 감소한다는 점, 셋째 2009년 평균 저수율이 66.9%였기 때문에 농업용수인 저수지 수위를 높일 필요가 없다는 점, 넷째 버드나무 군락지 수만 평이 수몰되고 법적보호종인 삵과 황조롱이의 서식여건이 변화한다는 점, 다섯째 찬반 주민사이의 갈등을 초래해 지역정서가 변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이 같은 이유를 들어 당시 일부 주민과 환경단체 등은 사업타당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 승인을 불허해야 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결국 사업은 진행됐다.

당시 우려했던 모든 것이 현실화된 지금 아이러니 하게도 진천군은 2017년 말까지 16억2천여만원을 들여 진천읍 건송리, 백곡면 사송리 등 백곡지 일원을 주민공원으로 만들기로 했다. 군은 예산을 들여 버드나무 숲길과 자연 친화적인 공원, 주차장을 조성해 가족단위 나들이객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천연기념물 제454호인 미호종개와 백곡지에 서식하는 민물고기 등을 관찰할 수 있는 미호종개 전시관도 건립할 계획이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수백억원을 들여 모든 것을 망가트리더니 이제 다시 사라진 미호종개를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관을 만들어 전시한다니 그 발상이 기가 찰 노릇이다.

1984년 미호종개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김익수(69) 전북대 명예교수는 2011년 제방 공사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적인 공법에 의한 대체서식지 조성으로 미호종개 집단은 자연적인 산란과 생장 등의 개체군 유지가 거의 불가능하리라 생각한다”며 “이 사업은 재고되어야 하고 자연서식지 보존과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국가적인 자연유산인 미호종개는 멸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미호종개는 잉어목 미꾸리과에 속하는 토종 물고기로 1984년 청주시 미호천 팔결교 근처에서 최초 발견돼 학계에 보고된 후 발견 서식지의 이름을 따 미호종개라 붙여졌다. 미호종개는 1급수의 물과 잔모래, 유속이 느리고 수심이 얕은 천에서만 서식하는 생물로 미호종개가 살고 있다는 것은 하천이 청정하게 살아있음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미호천 오염으로 본류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잔잔하게 물이 흐르는 하천에서 살 수 있는 미호종개를 수족관에 가둬 전시용으로 삼는 일은 미호종개를 학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 혈세 수백억원을 들여 버드나무 군락지를 파헤치고 미호종개 서식지를 훼손하더니 다시 혈세를 들여 새롭게 전시관을 조성한다는 것도 엄청난 국력낭비다. 잘못됐던 정책을 바로 잡고 싶다면 환경단체와 전문가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남아 있는 미호종개 서식환경을 보호하는 쪽에 사업예산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

진천군의 이 같은 행보와 다르게 문화재청은 충남 부여·청양 지천의 미호종개 서식지를 천연기념물 533호로 지정한바 있다. 이미 미호종개에 관한 기득권을 청양지천에 빼앗긴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미호종개 전시관이 중요한지, 서식지 보호지정 등이 중요한지 신중하게 검토해볼 일이다.

이날 답사 중에 공교롭게도 백곡면 사송리 사정교 아래서 쪽대꾼이 물고기 잡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다가가 보았다. 2007년 미호종개가 발견됐던 장소에서 2km 미터 정도 하류인 백곡지 상류 사정교 아래다. 지속된 가뭄으로 하천 수량이 줄어들면서 일부지역에서 수면이 얕아진데다 물 흐름이 완만한 잔모래 하천이었다. 뜻밖에도 쪽대어망 안에 여러 마리의 미호종개가 걸려들어 있었다. 가늘고 작은 새끼부터 다자란 미호종개까지 다양한 크기가 서식하고 있었고 그 밖의 토종어류 10여종이 발견됐다. 토종어류 로는 참몰개, 모래무지, 점줄종개, 참마자, 돌마자, 가시납지리, 치리, 메기, 민물검정망둑 등과 외래어종 으로는 블루길이 들어 있었다. 좁은 지역에서 다양한 토종어류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임한빈씨는 “백곡천에서 미호종개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미호종개가 나온 것을 보고 놀랐다. 미호종개를 모르는 보통 사람들은 미호종개를 잡아갈 수밖에 없다. 미호종개 서식지 보호를 위해 지자체의 관심이 절실하다. 현재 발견된 지역 보호를 위한 안내판 설치와 주민계도 활동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백곡저수지 일대를 미호종개와 연계해 공원화 사업을 벌이기 전에 백곡천 유역에서 미호종개가 서식하고 있는지 생태환경조사를 먼저 실시해야 한다. 백곡지 상류에서 미호종개가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만큼 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환경정책이 선행돼야 한다. 백곡천에서 미호종개가 멸종위기에 처한 마당에 진천군이 미호종개를 상징적으로만 내세워 어떤 사업을 계획한다는 것은 관광객을 눈속임 하는 일이다. 저수지 외형 관광화사업보다 미호종개가 돌아와 살 수 있는 환경조성이 더 시급한 일이다.

청양군에 비하면 늦었지만 미호천을 미호종개가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되돌려 놓는 일과 백곡천 유역의 미호종개 서식지 법적보호지 지정을 위해 자치단체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취재지원 미호천 지킴이 전숙자·임한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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