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미호천이 준 상처, 미호천으로 회복하는 돌여울 마을(충북 진천군 초평면 중석리 미호1교~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백곡천 합수부)

▲ 마을 땅속이 모두 돌로 이루어져 돌여울, 석탄마을이라 부른다. 10여년 전에는 장마철 홍수피해로 상습 침수 지역이었으나 최근 강수량이 줄어 홍수피해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대신 앞으로 탁 트인 미호천 풍광이 압권이어서 배산임수를 갖춘 살기 좋은 마을로 꼽힌다.

높은 제방 없어 장마철 상습 홍수

제방 대신 저지대 주민 이주 선택

 

백곡천과 합수부, 철새도래지

공사 등으로 철새 모습 사라져

오래간만에 하늘이 쾌청한 9월 중순이다. 미호천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들의 벼가 여물어가고 있고 조금씩 노란색을 띄기 시작했다. 들녘의 색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계절,  미호천 제방위에는 봄꽃이 진지 오래됐고 이제 여름꽃 마저 막바지에 접어들어 마지막 꽃잎이 듬성듬성 만발하게 피어 있었다. 그 꽃 위를 나비와 잠자리가 분주하게 날아다닌다.

충북 진천군 초평면 중석리 미호 1교에서 시작된 답사는 미호천 우안을 따라 걸었다. 우안은 제방 둑 포장이 되지 않아 풀숲 사이로 자연스럽게 길이 나 있어 주변으로 다양한 들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제비꿀은 농로 언저리나 초지에 사는데 반기생(半寄生)식물이다. 주로 여러해살이의 벼과와 콩과 식물을 숙주로 삼는데 미호천 제방길에서 만난 제비꿀은 잔디나 띠 뿌리에 기생한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독립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는 남에게 의존해서 산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물가에서 흔히 사는 한해살이 차풀이 우거져 자라고 있다. 줄기는 곧게 서고 많은 가지를 치는데 잎 조각이 깃털 모양으로 좁게 두 줄로 배열돼 있다. 꽃은 잎겨드랑이로부터 자라난 짤막한 꽃자루에 1~2송이씩 피는데 5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나비 모양의 꽃은 노란색이다.  초가을에 열매와 잎, 줄기를 채취해 말렸다 끓여 마시면 이뇨에 효능이 있어 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도심 공원이나 농로, 야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달맞이꽃, 나팔꽃, 비수리 꽃 등 여름 꽃이 대부분 지고 마지막 한두 개 남은 꽃이 여름이 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달맞이꽃과 나팔꽃의 우목한 곳에 앉아 마지막 남은 단맛을 먹으려는 듯 줄점팔랑나비가 붙어 있다. 이 줄점팔랑나미는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에게는 애물단지다. 최근 기온 온난화와 낮은 강우량 등으로 개체수가 늘어난 줄점팔랑나비는 벼가 한창 무르익는 9월 수확량 감소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어린 유충부터 큰 유충까지 벼 잎을 갉아 먹고 그 속에서 번데기를 형성하기 때문에 화학약제 방제효율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호1교를 지나 우안을 따라 걷다보면 중석리와 오갑리를 잇는 세월교를 만난다. 이 세월교에서 바라본 미호천은 왕버드나무 군락지가 있고 모래톱과 하중도가 잘 발달돼 있는데, 수량이 적어 여울이 제방과 붙어 모래톱으로 변형된 흔적이 보인다.

미호천 지킴이 임한빈씨는 “수년전만 해도 강수량이 많아 여울이 잘 발달돼 있었지만 갈수록 여울이 사라지고 제방과 붙어 모래톱이 돼버린다”며 “이러한 하천의 변형은 하천 생태계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세월교에서 1.5km를 걷다 건너편 초평면 오갑리 돌여울마을(석탄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오갑교를 건넜다. 오갑교를 건너 오갑삼거리에서 직진하면 초평면소재지와 증평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난 길은 덕산양조장, 이영남장군묘소 방면의 이정표가 있다. 오갑교 다리를 에돌아 우측으로 난 마을길을 따라가면 오래전 석탄을 캤던 돌여울 마을이 미호천 변을 끼고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돌여울 마을에서 미호천을 바라보면 풍수의 좋은 조건인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뒤에는 먹뱅이산(200m)이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미호천 풍광이 압권이라 전형적인 살기 좋은 마을이라 하기에 알맞다. 하지만 이 돌여울 마을에도 아픔이 있다.

시집와 평생 돌여울에서 살았다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마을 땅 1~2m만 파면 돌이 나와. 그래서 돌여울, 석탄마을이라 부르지. 10년 전만 해도 비가 많이 오면 마을이 잠겨 홍수피해가 컸어. 한여름에 집과 세간살이를 내던지고 마을회관으로 가거나 다른 마을로 가야 했지. 요즘에는 비가 많이 안 오니까 그나마 비피해가 없지. 그런데 비라는 게  언제 다시 얼마나 내릴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고. 그거만 빼면 살기 좋은 동네여. 그때 고생헌거 말도 마.”

10여년 전만 해도 오갑리 돌여울 마을은 미호천과 마을 사이에 높은 제방이 없어 장마철 홍수가 나면 상습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은 강수량이 급격히 줄어 비 피해가 사라진 셈인데, 아주머니의 말대로 비는 자연의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는 예측할 수 없다. 다행히 상습피해를 겪었던 저지대 주민 몇 가구가 진천군이 마련한 집단이주마을로 이주한 상태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래도 남은 것은 마을 앞으로 탁 트인 미호천 전경이다. 마을주민들이 홍수피해를 겪어가며 높은 제방 둑 건설을 바랬지만 정부는 수십억원이 소요되는 제방 둑 건설보다 이주대책으로 대안을 마련했고 남은 주민들은 비가 많이 내리면 불안하기는 하지만 마을길 오른쪽 저지대에는 주민들이 철거를 한 상태라 그나마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오랫동안 힘들었지만 미호천의 자연풍광을 살리게 된 대가가 주민들에게 언젠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초평면 오갑리는 석탄마을에서 화산리 생파리로 넘어가는 곳에 큰 고개인 머거나미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중심으로 과거에는 주막이 많았다고 한다.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두리, 영신리, 태하리, 영주원, 삼태리의 일부와 방동면의 화성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갑리라 했다. 자연마을로는 돌여울, 말머리(馬頭), 새말(永薪), 양달말, 영주원, 원대, 응달말 등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머거너미고개 너머 영제원 못 미친 곳에서, 국가에 상납할 물건을 실은 말이 도둑에게 물건을 몽땅 뺏겼고 그 말이 안터라는 마을에 가서 있었는데, 관에서는 안터 사람들의 소행이라 하여 변상을 하라 하니 한 집 두 집 안터를 떠났다. 새로 터를 잡아 살다 보니 동리가 형성되었고 이를 새말이라 이름 하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오갑리의 주요 농산물로 쌀, 마늘, 들깨, 콩 등이 재배되고 있고 먹뱅이산 뒤편으로 진천초평농공단지가 들어서 있고 마을 앞 길 미호천을 따라 먹뱅이산을 지나면 왼쪽으로는 초평저수지, 오른쪽은 미호천 농다리로 이어진다. 우리는 돌여울 마을에서 나와 다시 오갑교를 건너 우안을 따라 여섯 번째 지천인 백곡천과 미호천이 만나는 합수부로 향했다.

합수부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는 중석리와 문백면 장월리, 구곡리가 넓은 들을 형성하고 있다. 백곡천으로 향하는 장월리 들은 천연기념물 199호 황새가 날아드는 곳이기도 하다.

임한빈씨는 “장월리 들에서 황새를 보곤 했는데, 올해도 날아올지 모르겠다”며 “백곡천과 미호천이 만나는 합수부는 엄청난 철새도래지였지만 최근 증평~진천 4차선 구간 공사 등 도로가 많이 생겨 철새의 모습은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가창오리, 기러기 등 겨울철새가 유난히 많았던 합수부에는 공사소음 때문인지 철새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백곡천에서 내려온 물길을 따라 토종물고기인 피래미, 돌마자, 참마자, 모래무지, 넙치 등 다양한 종류가 서식하고 있다.

 취재지원 미호천 지킴이 전숙자·임한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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