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흥덕문화의 집 관장·시인

▲ 문화기획자로서 시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주민들 삶 깊숙이 파고들어 그들의 삶에 위안이 되거나, 삶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표 나지 않게 충동질 하는 알짜배기 일꾼, 이종수 흥덕문화의 집 관장.

-나-

 

나니까

외롭다

불거져 나온 옹이처럼

나이므로

나로부터

온갖 수사가 필요 없이

나였기 때문에

 

나를 붙들고

사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내던지고 너에게로 갈 수 없는,

 

오로지 나여서

몇 번이나 뿔 뽑고

나 아닌 무엇이 되려 하였으나

나이고 싶은

나로 돌아와 너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라는 자리 때문에

외롭고

슬프고

아프고

끝내 기쁜 나로

죽는

 

나.

-이종수 詩-

 

 

도서관지기 등 주민 곁에 머문 알짜배기 일꾼

 

구술자료집 ‘골목은 강으로 흐른다’ 3년째 진행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이야기 생생히 담아내

마음 같아서는 청주시 전역으로 확대하고싶어

 

문화사업 정부지원 만큼 기업 관심도 절실

문화기획자로서 시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주민들 삶 깊숙이 파고들어 그들의 삶에 위안이 되거나, 삶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표 나지 않게 충동질 하는 알짜배기 일꾼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이종수(51·사진) 흥덕문화의 집 관장이자 조선일보 신춘문예 출신의 시인, 참도깨비 어린이 도서관 지킴이, 충북작가 편집위원, 엽서시 동인 편집·발행인.

청주시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흥덕구청 옆 차량등록사업소를 리모델링해 만든 공간, ‘흥덕문화의 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어떻게 하면 시민들과 함께 공감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갈까 고민하는 이종수 관장을 그곳에서 만났다.

흥덕문화의 집은 개관 목표대로 청주시민의 문화 휴식 공간이다. 그 역할을 다하는 듯 들어서는 입구부터 오래된 단골 찻집처럼 정겹고 오래 묶어 안정된 작은 마을 도서관에 온 느낌이다. 이종수 관장이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참도깨비 어린이 도서관’을 합쳐 놓아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서 1만여권은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덤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이 수많은 장서에 이 관장은 흥덕문화의 집이 주축이 돼 엮어 발행한 구술 자료집 책, 몇 권을 더 추가해 놓았다. 문화의 집 생활문화 활동지원 사업 공모에 선정돼 진행된 ‘골목은 강으로 흐른다’ 연작 1권 ‘여기 꼭두배기집 저 뽕나무밭’(2013), 2권 ‘딱지 둘이 딱지 동무’(2014)에 이어 2015년에는 사직1동 동네사용설명서 ‘사직1동 닷컴’이라는 잡지형식의 책을 창간해 내놓았다.

3년간 이어지며 구술자료집의 출판 성격이 나름 진화한 셈이다. 굳이 사업 대상이 ‘사직1동’인 것은 행적구역상 흥덕문화의 집이 속한 마을이라는 점과 아직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옛 골목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 거리가 풍성한 귀한 골목마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1권을 내놓을 당시 그는 청매화와 홍매화를 담장 너머로 던지는 집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며 골목 끝 사진연구소를 연 어르신, 떠나보낸 세월만큼 손때 묻고 집주인을 닮은 물건들의 이야기를 담아 골목자서전을 내고 싶었고 골목난전에 골목박물관도 만들어 황망하기만 한 도시의 따듯한 속살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2권에는 골목 2세대들이 골목에서 신나게 놀았던 이야기와 골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도 중요하지만 타 단체와 공조하는 네크워크사업, 즉 동아리 사업이다. 이 과정에서 마을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이로 인해 문화의 집 역할이 탄탄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충북지역에서 어느 한 단체나 기관이 주도적으로 한 마을을 관찰하고 기록한 사례가 없었죠. 우리동네라는 개념을 갖고 우리동네 주민이 주죽이 돼서 우리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이 어느 정도 공공의 자산이 될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는 마을의 기록 유산이 될 것이고 이것을 책으로 내는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골목은 강으로 흐른다’사업은 흥덕문화의 집이라는 공간이 시민들이 찾아와 향유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직접 시민들 곁으로 다가가 소통하고 공유하는 공간으로 거듭나는 입체적인 공간으로의 탈바꿈을 의미한다. 흥덕문화의 집 관장 5년차인 그가 발로 뛰어 일궈낸 성과인 셈이다.

“한 개인의 삶이자 골목사람들의 자서전이지만 우리 민중을 상징하는 자서전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우리 지역의 이야기 자산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소설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저마다 한권의 책이 되는 날을 위해 올해도 골목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나설 생각입니다.”

흥덕문화의 집 관장을 맡기 전 그는 이미 작은 도서관 사업을 20여년 간 진행해온 도서관지기다. 자신이 운영하던 작은 도서관 ‘참도깨비 어린이 도서관’을 흥덕문화의 집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흥덕문화의 집과 작은 도서관이 윈윈해 흥덕문화의 집이 풍성해지는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었다.

“작은 도서관은 마을 속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도서관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며 부모와 어린이들이 함께 책을 읽어 아이들에게는 산교육이 되고 부모들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되죠. 작은 도서관은 어린이와 부모를 연결하는, 혹은 마을 공동체를 엮는 구심됨이 될 수 있죠. 사람들이 책에 자연스럽게 접근하면서 교육차원에서 솔선수범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어린이와 부모 모두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죠.”

청주시 작은 도서관 협의회 조직을 통해 청주시가 책을 활용한 문화사업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모델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그런 점에서 흥덕문화의 집 내에 있는 참도깨비 어린이 도서관은 주민 밀착형 사업의 한 전형이며 흥덕문화의 집을 가득 채운 지식의 창고이며 마음의 양식(糧食)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문화기획자 못지않게 시인의 역할도 중요한 일상 중 하나다. 시를 쓰는 일이나,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산문으로 쓰거나, 도서관지기 노릇을 하며 아이들의 성장기를 관찰한 ‘도토리 일기’나 오롯이 그의 펜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다시 어린이들에게, 혹은 시인을 꿈꾸는 어른들에게 지침이 되기도 한다.

권태응문학제 기간에 이루어지는 ‘어린이 시인학교’, 흥덕문화의 집에서 진행되는 ‘시창작교실’ 등을 통해 그는 현재의 사람들과 어린시절 동시를 쓰고자 했던 정신을 함께 나누는 것이 소중하다고 여긴다.

시 쓰기를 희망하는 어린이와 함께 시를 읽고 자연을 관찰하며 그 속에서 자기 목소리 내는 법을 고민하고 들어주고 시를 만들어보는 과정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작은 도서관 사업과 연계돼 마을마다 시를 읽고 시를 짓는 문화가 번창하는 것이 그의 바람인 것이다.

시인으로서 시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곧 그가 문화기획자로서 살아가는 실천적 행동가 모습 자체이기도 하다. 골목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엮어 정기적으로 간행하는 일은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는 일이고 시인으로서 그가 시에서 추구하는 사람의 삶이 어디에 깃들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묻는 질문과 같다. 그가 온통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며 그런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 개개인의 이야기다.

“있는 듯 없는 듯 특별하지 않은 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끝없이 바라봐 주는 것이죠. 이것이 곧 시이고 살아가고 싶은 방향점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문학으로 봤을 때 더딜 수 있지만 시인으로서 정신이 두터워지는 계기가 된다고 믿죠.”

시인의 일이나 문화기획자로서 골목을 누비며 주민들을 만나는 일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는 그는 맘껏 일할 수 있는 토대, 혹은 뒷받침이 마련되기를 절실하게 바란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발품을 팔아가며 하는 일이지만 지역문화에 반드시 필요한 일들을 진행하면서 예산이 줄고 사업이 폐기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힘이 빠진다.

마음 같아서는 3년간 해왔던 골목사업을 청주시 골목골목 전역으로 확대하고 싶다. 일환으로 충북작가회의 작가들과 함께 ‘충북의 문학지리-장소의 기억, 청주를 말하다’ 연속기획인 육거리 시장사람들의 이야기 ‘육감-여섯가지 느낌’을 별도의 구술집으로 엮는데 참여 했다.

문화의 집 공간도 시설이 확장되고 편리하게 리모델링됐으면 좋겠다.

좀 더 욕심을 내본다면 허용된 예산으로 허용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과 시대에 맞게 특화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사업을 위해 지원이 넉넉했으면 좋겠다.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이나 주민들이 문화의 집 역할이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공간이라는 것을 세심하게 봐주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충북민예총과 버스회사인 기업이 공동 기획한 ‘버스와 함께 하는 예술여행’은 예술과 기업이 윈윈하는 좋은 사례”라며 “문화활동 사업에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시인이 시집을 팔아 먹고사는 일이 어느 정도 척박한지 모르는 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쓰기를 멈추지 않으며 편집·발행인으로 열 쪽 분량의 ‘엽서 詩’ 동인활동을 10년째 멈추지 않고 하는 그는 천상 시인이고 시인처럼 살고 있다.

전남 벌교 출생인 이종수 관장은 충북이 제2의 고향인 셈이다.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닭 공화국’이 당선된 후 시집 ‘자작나무 눈처럼’, ‘달함지’ 등을 냈고 도서관지기로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쓴 산문집 ‘요놈이 커서 무엇이 될꼬’를 발행했다.

책과 함께 하는 아이들에게,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게 오히려 삶의 철학을 배운다는 그는 오늘도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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