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일 년만의 만남이다.

해를 넘기고 각자의 안부도 궁금하던 차에 집안의 큰일을 치른 핑계로 겸사겸사 친구들을 한자리로 불렀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고자 한정식 집에 점심 예약을 하고 그녀들을 만났다.

적당히 얼굴과 몸에 살들이 붙은 친구들은 예전 새침하고 참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수다가 고파서 온 듯 앉자마자 말들을 쏟아 놓는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방마다 가득이다. 예약을 하지 않고 왔으면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려야 하는 낭패를 볼 뻔 했다.

신년 모임들로 여기저기 중년여성들이 많다.

그들의 말소리가 방문너머 우리 자리까지 건너온다. 역시 여성 호르몬들이 감소하고 남성호르몬이 많아진다는 갱년기 여인네들의 씩씩한 말소리다. 평소 말소리를 작게 하는 사람이 노년에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도 나왔다며 우스갯소리로 우리들 목소리 또한 커지는 것을 그 연구 결과를 빗대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안위한다.

B는 학교 다닐 때 명랑하고 밝았던 친구인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느라 삶이 신산해 지니 고달픈 생활에 어딘지 모르게 지쳐 보이고 그늘져 보인다.

J 또한 불경기 속 하는 장사가 신통찮아 고민이란다. 친구들 삶이 다 거기서 거기 환하지 않다.

잠시 한국에 다니러 온 미국의 E도 마찬가지다. 삼십년 가까이 이국에서 산 그녀는 미물인 여우도 죽을 땐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데 하며 쓸쓸해 한다.

그녀는 지독한 향수병에 걸려 있다. 큰아이를 낳아 기를 때 어찌나 타국에서의 향수병이 심하던지 태평양이 보이는 바닷가에 날마다 아이를 데리고 나와 하염없이 앉아있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단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있는 아이와 그녀의 뒷모습이 바다를 앞에 두고 작고 동그랗게 그려진다.

그때 우울증이 깊어 좀 더 진행 됐다면 자칫 몹쓸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며 깊은 한숨을 쉰다. 둘째 아이 임신했을 때 임신성 당뇨까지 걸린 그녀는 현재 하루 두 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만 하는 중증 환자다.

모든 병은 다 스트레스에서 오는 것 같다고 하니 그녀도 일면 수긍을 한다. 형제자매도 없이 외동으로 큰 그녀는 사실 입양아다. 그 사실이 늘 그녀를 쓸쓸하게 했고 어디에서도 발을 굳건히 내리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흘러 왔다.

그녀가 가장 행복할 때는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라 한다.

품안에 있던 자식들도 하나, 둘 독립해서 곁을 떠나고, 그제야 주위를 돌아보니 자기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흉허물 없이 감싸주는 사람은 남편도 아니고 그 옛날 갈래머리 소녀시절 벗들이라 말한다. 그녀에게 살가운 딸도 없으니 오죽 할까! 다들 아들만 둘인 엄마는 목매달 감이라 한마디씩 한다.

그녀의 소원은 더 늙기 전에 한국 고향땅에 와서 친구들과 소박한 음식들을 앞에 놓고 사심 없이 수다 삼매경에 빠져 한세월 보내며 늙고 싶은 것이다.

헛공약인줄 알면서도 우리는 의기투합해 한집에서 아니면 한 동네에서라도 같이 서로의 이득을 따지지 말고 다독이며 살자고 말을 풍성하게 나눈다.

중년의 여자가 잘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덕목 중에는 역시 친구가 절대 빠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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