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 건양대학교 군사경찰대학 교수

필자는 28년간 군 생활을 마치고 2006년 6월에 전역했다. 그러니까 전역한 지도 9년이 지난 셈이다. 군 생활을 한 사람들에겐 누구나 하나 둘쯤은 아름다웠던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군생활을 하는 동안 몇가지 잊지 못 할 추억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1월이 되면 항상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다. 장교로 임관한 필자는 부대배치를 받은 후 1년이 지난 후인 중위 때 결혼을 했다. 막상 결혼을 하고보니 살림집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중대장은 대대장에게 건의해 관사 중에 대대장이 쓰던 오래된 관사가 있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고쳐야 할 부분이 많지만 수리해 사용할 생각이 있으면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주었다. 관사는 사람이 오랫동안 살지 않아서 폐가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대대장 관사로 사용된 집이라 방이 두개에 부엌이 있고 앞마당도 꽤 넓은 편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아래쪽으로 두 분의 중대장 가정이 살고 있어 퇴근을 자주 못해도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곧바로 수리를 하고 이사하기로 했다. 폐가와 다름없었던 집도 수리를 하니 그런대로 살만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이었다. 그 날도 피곤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나가려는데 이상하게도 방바닥이 점점 뜨거워짐을 느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혹시 어제 지펴놓은 아궁이에서 화재라도 난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잠옷을 입은 채로 벌떡 일어나 부엌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부엌 쪽에서 사람소리 같기도 하고 동물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부엌에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시커먼 물체가 후다닥 산속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부엌에 들어 가보니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이렇게 불을 지폈는지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출근하기 전에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척 궁금해 했다. 아무튼 그날은 따스하게 새벽을 보낼 수 있었다.

부대에 출근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얼마 전 소대원이 출근한 나를 보자 인사를 하며 낄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왜 웃느냐 물으니 얼굴에 숯검정이 새카맣게 묻어 있다는 것이다. 그 때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아기가 추워서 새벽같이 일어나 장작불을 지피느라 고생 좀하고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소대원들이 그 말을 듣고 새벽같이 관사로 넘어와 불을 지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언뜻 떠올랐다. 내부반장을 조용히 불러 물었다. 그러나 내무반장은 절대 그런 일이 없다 했다. 눈치를 보니 뭔가 숨기는 것 같아 계속적으로 추궁하니 마지못해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소대장이 아기를 키우는데 추위 때문에 무척 어려워하는 것 같아 소대원들이 의논해 근무가 끝나고 인수인계할 때 잠깐 관사에 가서 장작불을 지피고 돌아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잊지 못 할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 때 그 아이는 벌써 시집을 가서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주부가 되어 있다. 지금도 부하들이 전우애로 피운 따스한 사랑의 장작불은 내 가슴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필자도 올해 한 해를 시작하면서 남을 따스하게 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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