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느림보의 산성 산사 찾아가기 첫 발길은 백제의 마지막 항쟁지인 운주산성(雲住山城)으로 향한다. 세종시 기념물 제 1호 운주산성은 전동면과 전의면에 걸쳐있다.

조치원에서 1번 국도를 따라 천안쪽으로 가다 우회전을 해야 한다. 들머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의자왕의 눈물처럼 서글픈 산줄기 끄트머리에 자리한 고산사를 오른쪽에 두고 부처님 산책길같이 고즈넉한 오솔길을 잠시 걷는다. 물소리가 급해지면 돌계단에 숨도 가쁘다. 반시간쯤 오르면 높은 성벽을 만나는데 여기가 문지이다. 문루도 없는 문지는 남문, 동문, 서문지가 따로 있는 것으로 보아 전의 쪽에서 성내로 들어가는 주요 통로였을 것이다. 복원한 문지 주변의 성벽은 원형인 여느 곳과는 축성 방법이 조금 달라 고증을 거쳤는지 의심스럽다.

들여다보이는 성안은 10년 전만 해도 갈대만 우거졌었는데 지금은 연못을 파고 꽃밭을 만들어 정비되었다. 정자에 앉아 바라보면 산줄기가 1번 국도를 건너 고려산성, 금이산성 쪽으로 뻗어 용트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부터 동문지를 제외하면 보수의 흔적이 없어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운주산성은 해발 460m인 정상을 포함해 3개의 봉우리를 거쳐 성내를 감싸 안은 포곡식 산성이다. 3천210m인 석축 외성의 안쪽으로 너른 평지를 감싸 안은 1천230m의 토축 내성이 있는 겹성이다. 관청이 있었는지 민가가 있었는지 몇 개의 건물터가 보이고, 본래 3군데였다고 하나 지금은 두 군데만 남아 있는 샘물을 발견할 수 있다. 걷는 재미는 3km 남짓 석성을 따르는 것이다. 포곡식 산성이지만 성벽 위로 난 오솔길을 밟아 걷다보면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지금 인근 사람들의 산책로가 된 운주산성길을 걸으면 온갖 상념에 사로잡힌다. 대륙을 향했던 백제 역사처럼 허물어져 구르는 성석도 안타깝고, 찬란했던 문화 부흥에 대한 유민들의 꿈도 찾아볼 길 없어 안쓰럽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전동에서 올라오는 동문지를 지나 작은 날망을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 서면 북으로 흑성산 아래 독립기념관 겨레의집 푸른 지붕이 가깝고, 동으로 오송읍을 건너 멀리 청주시내가 손에 잡힐 듯하다. 여기서 서울 위례성과 공주 공산성과 직선으로 연결된다 하니 백제의 중심을 하나로 꿰어내는 요지라 여길만하다. 정상부에 둘레가 약 30m 정도의 둥근 대지를 만들고 제단 앞에 고유문(告由文)이라는 표석을 세웠다. 문헌에 보면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이 있었다고 하는데 새로 세운 표석의 의미는 이해하기 어렵다.

제단 바로 아래 백제의 얼 상징탑이 있다. 탑은 단아하다. 화려하지도 촌스럽지도 않다. 담담하면서 열망이 스민 백제의 정신 그대로다. 운주산성은 백제가 멸망하고 풍광, 복신, 도침 장군을 선두로 일어났던 백제 부흥운동의 최후 항쟁지이다. 이곳이 분수령이 된다면 얼의 경계도 자연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오늘 삼국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영호남 충청을 경계 짓는다면 소인배가 될 것이다. 정상에서 서쪽 성벽을 살펴 오솔길로 내려서며 위례와 공산성을 향해 우뚝 서 있는 탑을 돌아보니 찬란했던 옛 문화를 그리워하는 백제인의 함성이 하늘로 치솟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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