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신라의 수도는 경주이고, 고구려의 수도는 평양이며, 백제의 수도는 부여입니다. 이 말을 듣고 퍼뜩 느껴지는 바가 혹시 없으시나요? 부여와 경주와 평양의 차이는 아주 간단합니다. 다른 곳은 모두 거대도시인데, 부여는 아직도 읍입니다. 이 사실이 오늘날의 한국에서 차지하는 백제의 위상을 무슨 상징처럼 보여줍니다. 고구려는 대륙을 한 때 호령했던 자랑스러운 지난날로 재구성되었고, 신라는 좀 불만스러워도 우리나라 역사의 정통 줄기를 이루어온 것으로 재구성 됐습니다.
그런데 백제는 어떤가요? 백제는 한 마디로 참혹합니다. 신라의 왕릉들이 경주에 그득한 데 반해 백제왕들의 무덤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1970년대에 우연찮게 발견된 무령왕릉을 빼면 그 수많은 왕들의 무덤은 정체불명의 백제시대 귀족들 무덤과 뒤섞여서 분간을 할 수 없습니다. 익산에 가면 말통대왕릉이 있는데, 어원으로 보면 신라 선화공주를 꾀어낸 맛둥 왕자였던 백제 무왕의 무덤이 분명한데, 역사학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판단으로 치부합니다. 백제는 우리나라 역에서 가장 심하게 지워진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를,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모아서 어렵게 재구성한 책이 있습니다. 위의 책입니다. 기존의 역사자료를 새롭게 해석하여 독특한 견해를 제시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신선한 것은, 전에 한 번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지적한 것이기는 하지만, 백제의 초기 왕들이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고, 그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하려 노력한 것입니다.
이도학도 초기 백제 왕들의 나이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에 착안하여 백제가 원래 두 나라였는데 그것이 한 나라로 합성되는 과정에서 역사학자들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억지로 짜 맞추는 바람에 임금들의 나이가 많아졌다는 식의 설명을 합니다. 원래 삼국은 한반도에 있었던 게 아니라 중국 대륙에서 활동했던 나라들이라는 것이 이 논거의 배경입니다. 실제로 중국 측의 역사기록에는 중국 대륙의 사건을 서술하는데 백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그런 자료와 삼국사기에 남은 백제자료를 연결시키자면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고, 그 상상력이 중국 대륙에서 활동하던 백제 세력이, 먼저 한반도로 건너와서 왕국을 세운 백제 세력으로 합류하면서 온전한 백제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편년이 조정되다 보니 초기 왕들의 나이가 상식과 크게 어긋나게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책을 읽다보면 역사에도 상상력이 좀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자료 분석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백제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이 책을 가장 먼저 읽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대중을 의식하고 쓴 책이어서 독자가 읽기 편하게 쓰려고 노력한 점도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