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석 시인

인간의 골격계에서 등뼈와 복장뼈를 연결하는 뼈를 갈비뼈라고 한다. 갈비뼈는 활처럼 휘어 가슴우리를 형성하는데, 그 안에 허파, 심장 등 인간의 중요한 장기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갈비뼈는 중요한 장기의 보호 기능을 가진 인간의 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뼈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집안에서의 아버지는 바로 그런 갈비뼈와 같은 존재였다. 무슨 일만 생기면 가족들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의 품으로 피신을 하였다. 그리고 도움과 보호를 요청하였다.

어머니도 형도 나도 동생들도 그랬다. 언제나 아버지는 우리 가족들의 안전한 피신처였고,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또한 아버지의 헛기침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겐 위엄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우리 형제들이 딴전을 피우거나 다툼이 있을 때도 아버지는 말 대신 헛기침 몇 번만을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으로 통제되었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런 아버지께서도 이제는 늙으셨다. 늙는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불행히도 해로(偕老)하셔야 할 짝을 늦은 나이에 잃으셨다. 칠십 대 후반이었다. 그리고는 여태껏 홀로 사신다. 팔십 대 중반이 넘으셨다. 작은 텃밭이 있는 시골집에서 홀로 끼니를 해결하신다. 연금 생활을 하시니까 경제적으로야 어려움이 없지만, 자식들 또한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니 그 또한 신경 쓸 필요 없지만, 시골의 하루는 길다. 문화생활을 즐기기에는 시내가 너무 멀고, 교통수단도 만만치 않다. 주변의 죽마고우 중 많은 분들은 이미 운명을 달리 하셨다. 외로울 수밖에 없다. 시골이라고 해서 농사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뙈기의 논밭도 없다. 다만 울안의 작은 텃밭 몇 고랑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소일거리로 자전거를 타셨다. 위험하다고 몇 번 말려 보았지만, 막무가내셨다. 아직은 건강하시다는 것이다. 그까짓 자전거 정도는 얼마든지 타실 수 있다는 것이다. 연세가 드시면서 위엄과 권위는 많이 바랬지만, 자존심만은 여전하시다. 외로움을 달래주지는 못할망정 자존심마저 꺾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것인데, 거기서 그만 탈이 생기고 말았다. 

내리막길에서 낙상을 하여 갈비뼈를 다치신 것이다. X-레이 사진에 아버지의 갈비뼈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의사가 말했다.

“연세가 연세인지라, 골밀도가 낮아 잘 안 보이시겠지만, 갈비뼈 6번과 7번에 금이 갔네요, 앞으로 보호자께서는…….”

의사는 내게 보호자라 부르며 몇 가지 처방을 내렸다. 보호자라? 나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보호자라는 호칭은 분명히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갈비뼈 안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건만, 언제 아버지께서 내 갈비뼈 안으로 들어오신 것일까? 늘 그랬듯 아버지가 나의 갈비뼈였지 어떻게 내가 아버지의 갈비뼈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거동마저 불편한 아버지를 부축하여 병원 문을 나서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붉은 노을이 성큼 다가와 갈비뼈 사이로 촉촉이 젖어 들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