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전 청주예총 부회장

사이버 시대에 문명의 총아로 각광받고 있는 휴대전화나 TV! 세상사 모든 게 그렇듯이 ‘잘 쓰면 양약이요 지나치면 독약!’인 것 같다. 필자의 나쁜 습관 중 하나가 TV를 지나치게 보는 것이었다. 주말이면 하루 종일도 못해 밤중, 새벽까지 거기에 빠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눈도 침침하고, 마음도 심란해 잠을 자도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그런 고질병(?)이 고쳐졌다. 의지와 결단으로 고친 게 아니라 환경이 고쳐 준 셈이 된다. 말이 통하질 않아 자연히 TV 화면에서 멀어지게 되더니 요즈음은 식사하면서 잠깐 보는 게 고작이다.

며칠 전 TV를 틀어놓고 밤을 먹고 있는데, TV화면에 사람의 신분증 같은 것을 한 시간 내내 비춰주는 것이 눈에 뜨였다. 무심코 화면 아래쪽을 보니 이 지방 ‘인민법원’이라고 되었다. 나는 ‘법원’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중국의 ‘인민법원’이 어떻단 말인가? 필자가 마침 고국에 있을 때 법원에 ‘민사소송조정위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시선은 자연히 화면상단으로 향했다. 제목이 ‘한제고소비명단(限制高消費名單)’이라고 되어 있다.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한제고소비명단’이라! 그 아래는 어느 사람의 신분증을 그대로 TV화면에  올린 것 같다. 하루 종일 곰곰이 생각하여 문제를 풀었다. 키워드가 ‘한제(限制)’에 있었다. 그 단어를 뒤집으니 제한(制限)이 되고 그러니 대번 알 것 같다. ‘제한고소비명단’이라! 남의 돈을 쓰고도 갚지 않은 사람! 바로 이것은 ‘신용불량자’ 명단이었다.

한국 같으면 ‘개인정보보호법’이 엄격하게 집행되고 있어서 상상도 못할 일이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도 공무상 개인정보를 유포하면 법에 저촉을 받는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TV 등 대중매체를 통해 ‘신용불량자명단’이 공공연히 소상하게 보도한다. 더하여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며칠씩 방영한다. 신용불량자뿐만 아니라 범법자는 엄격하여 발붙일 곳이 없다.

한국에선 개인의 인권에 초점을  맞춘 반면, 중국에선 한 사람의 행위가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이곳에선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아주 철저한 사회다. 죄인에 대해서는 엄격한 반면, 선행이나 우수한 인재에 대한 예우는 대단하다. 하루는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출입구에 대형 현판이 눈에 뜨였다. 중간고사 성적결과이다. 일 등한 학생이 총점 550점 만점에 432.5라고 붙어 있었다. 일등부터 60등까지 상위 30% 학생의 명단이 이런 식으로 붙어 있다. 한국에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요?’라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시위가 끊일 날이 없이 어수선한 우리의 시위현장을 보면서! 법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개인의 인권이란 무엇인가?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법과 인권’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의 사회현실이 안쓰럽게 생각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