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칼럼] 첫눈이 내린다
[오혜숙 칼럼] 첫눈이 내린다
  • 충청매일
  • 승인 2015.12.0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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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숙 수필가

첫눈이 내린다. 날씨가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는 날이다. 모임 식사 후 첫눈을 핑계로 지인들과 커피 집으로 몰려간다. 한산하던 매장의 테이블마다 사람들로 가득이다. 날씨가 겨울답지 않게 따듯하다가 시베리아 한랭전선이 극성이니 덩달아 커피 집이 북적인다.

올 겨울 우리 지역 눈은 좀 늦었다. 대게 11월 초순경에 진눈깨비 비슷하게 언제 내렸는지 모르게 슬쩍 지나가곤 했다. 이번 눈은 절기상 소설이 무색하게 폭설이 내려 강원도 산간지방은 대설 경보까지 내려졌다.

1980년도에 학부생이었던 나는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서슬 퍼렇게 추운시대의 한가운데서 우울한 청춘을 보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날아다니는 교정에서 휴강과 종강이 반복되며 제대로 된 강의를 받은 날이 별로 없다. 시위는 제5공화국의 억압 속 더욱 격렬해졌다. 강의실에 앉아 있다는 자체가 시대에 동참하지 못한 비겁한 자들이란 자책에 빠지게 했다.

누군가는 건장한 사내들의 발길질에 머리채를 잡힌채 공안당국에 연행됐고,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 광경을 바라만 보는 자들과,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 자들이 교문 앞으로 맹렬히 달려 나가 진압대와 뒤엉키는 아수라장이 연일이었다.

배운 값을 하라는 시대의 준엄한 부추김과 부모님의 휜 허리를 생각해서라도 조신하게 있어야 한다는 갈등이 연일 머릿속을 휘 젖는 혼란의 세월이었다.

아침에 집 문을 나설 때 늙은 아버지어머니들은 ‘데모를 하지마라’의 당부가 자식들에게 종교의 경전처럼 귀에 박히게 했다. 그러나 그들의 절절한 애원이 청춘의 발목을 결코 다 붙잡진 못했다. 강의실엔 취업을 걱정하는 복학 남학생과 여학생 몇몇이 앉아 오후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을 맞춰 강의실에 들어온 초로의 교수는 혼잣말로 이렇게 수업을 진행하기 힘든 적도 없다면서 한동안 창문 밖만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여기 앉아 있다고 해서 나와 자네들이 다 비겁자들은 아닐세’라고 운을 뗀다. 자기연민의 변명처럼 들렸지만 우리는 조용히 교수의 말에 귀 기울였다. 교수의 말 속엔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봄날의 벚꽃이 바람에 하롱거리며 땅 위로 떨어지듯 창밖에서 눈이 난분분 내렸다. 그 해의 첫눈이었다. 분위기 때문일까 눈 내리는 창밖 풍경이 춥고 서글펐다.

첫눈이란 기본 정서가 애틋한 사랑의 만남처럼 낭만적이고 애틋함으로 다가오지만, 내게 있어 첫눈은 그날의 강의실 풍경이 연상되며 쓸쓸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식 날에 올해의 첫눈이 매서운 추위 속 스산하게 내렸다. 평생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큰 어른이 이젠 하늘의 별로 돌아가셨다.

그 분이 남기신 민주주의 정치적 유훈은 통합과 화합이다.

마지막 가시는 날 그 분의 간절한 바람이 이 땅에 눈으로 대신 내린 것은 아닐까! 언뜻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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