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11월 11일을 ‘빼빼로 데이’라고 어린이들은 빼빼로 과자를 사먹으며 즐겼다. 또한 이날은 6·25참전 유엔 전몰장병 추모일로, 11월 11일 11시에 전 세계가 부산 유엔군 묘지를 향해 자유와 평화를 위해 산화한 영혼에 묵념을 올리는 날이었다. 또 한편으론 저성장의 늪에서 소비 진작을 위한 모바일 쇼핑 물 이벤트가 세계소비시장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조용히 밥상머리에 앉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젓가락을 연상하며 그것이 지닌 삶의 의미를 생각했다. 젓가락은 두 막대가 맛 붙어 짝을 이룰 때 음식을 집는 제구실을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부부가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 같은 연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찍이 공자(孔子)께서도 사람다움을 인(仁)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그 인(仁)은 혼자서 행하는 인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듯이 두 시람 사이에서 생겨나는 덕성(德性)이라 했다. 젓갈 질은 두 막대를 들고 허공에서 엇갈림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적절하고 정확하게 음식을 집어내는 것은 가히 묘기에 가깝다. 그래도 나는 때마다 젓갈 짝을 들기만 하면 한평생을 젓갈 질하듯 살아온 환영(幻影)이 아내의 얼굴에 자꾸 떠올라 남모르는 연정을 느끼곤 한다. 어머님이 중풍에 반신불수가 되시어 젓갈 질을 못하시니 때마다 아내가 밥숟갈에 반찬을 집어 올려 드리고, 젖 먹던 어린 내가 밥을 먹기 시작할 때 젓갈 질을 못 익혀 반찬에 손이가면, 어머니가 젓갈로 집어주시던 사랑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어쩌면 젓갈 질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여 나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덕행(德行)이요, 세상을 떠날 때가되면 손을 놓아야할 인덕(仁德)인지도 모른다.

하물며 두발로 걸어 다니고 두 손을 흔들듯 일생을 같이해온 인생의 동반자! 일심동체가 되어 행복의 꿈을 찾아 헤매던 모진 세월이 내 가슴에 스며드는 젓가락 연정으로 느껴진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식장에서 신랑 신부가 백년의 약속을 지키겠노라 맞절을 한다. 상위에 커다란 젓가락이 놓여있어 신랑은 청포묵을 그 젓갈로 집어먹어야했다. 하객들은 신랑의 서투른 솜씨를 보고 웃으며 박수치고 법석을 떤다. 그때 신랑은 젓가락의 묘기를 연출하려 애를 써보지만 그리 쉽지 않다. 그 젓갈 질에는 부부가 힘을 모아 잘 살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으리라.

식사 때만 만져보는 은수저! 아내가 시집올 때 보물처럼 싸온 것이지만 오십년 세월의 무게만큼 광택을 잃어 간다. 그 빛바랜 은빛 속에 비쳐진 삶의 흔적에 눈물어린 시련도, 무지갯빛 환희도 고스란히 담겨 있으리. 젓가락질을 두 막대기의 연정이라 여기니 긴 겨울밤 적막을 깨고 울리는 어머님의 다듬이질 소리가 은은히 들리는 것 같다. 그 소리에는 동지섣달 긴긴밤 지세 우시며 시부모님 겨울옷 다듬이질하시던 어머님의 고달픈 모습이 떠오른다.

똑딱, 똑딱, 똑딱……. 지금은 듣기 어려운 추억의 향수였지만 방망이 하나로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젓가락 장단 치듯 두 방망이가 번갈아 두드리는 소리가 하모니가 되어 가슴 절이는 그리운 정이 울어나는 소리다. 밥상머리에 앉아 늘 젓갈 질을 하면서 꿈같이 흘러간 세월을 굽어보는 눈길에는 둘이 함께 평생을 찾아 헤매던 행복의 꿈! 그것이 자꾸만 젓가락 연정처럼 느껴져 빼빼로의 날 꿈을 향한 기도, 쇼핑몰 이벤트도 나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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