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석 시인

꽃은 왜 아름다운가? 이 질문은 조금 상투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질문을 해마다 학생들에게 던진다. 금방 응답이 올 것 같지만 의외로 응답이 늦다. 뒤늦은 응답 또한 궁색하다. 빛깔과 향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제일 많지만, 빛깔과 향기라면 꽃보다 더 좋은 것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내가 원하는 모범 응답은 지기 때문이다.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만약 꽃이 영원히 피어 있는 것이라면 절대로 아름다운 존재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영원한 것은 우리를 긴장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권태를 준다. 권태로운 것은 아름다울 수가 없다. 불꽃놀이가 아름다운 것도 그것이 순간적으로 명멸(明滅)하기 때문이고, 청춘이 아름다운 것도 그것이 순간적으로 지나가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것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순간적이다. 다만, 그 순간을 어떻게 피었다가 지느냐, 하는 것이 요체일 뿐이다.

지금도 지구의 곳곳에서는 수없이 많은 꽃들이 피었다 진다. 모양과 크기, 빛깔과 향기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취향은 어느 정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듯도 보인다. 사람들은 그 공통분모에 해당하는 꽃들을 주로 완상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한다. 특히 선물용으로는 꽃다발을 많이 선호하는데, 그 꽃다발에는 일정한 유형이 있다.

즉, 아름답고 요염한 꽃은 중심에 서고 그렇지 못한 꽃은 주변이나 뒤에 선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꽃들은 중심에 서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 위해 밤낮 여념이 없는데, 유독 그런 꽃들의 등 뒤에서 조용히 웃고만 있는 꽃이 있다. 바로 안개꽃이다.

안개꽃은 결코 중심에 서지 않는다. 언제든지 스스로 물러나 스스럼없이 배경이 된다. 배경이 되어 다른 꽃들의 아름다움을 받쳐 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는 안개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안개꽃을 그저 작고 소박한 꽃이라고만 여겼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등 뒤에 섬으로써 자신의 진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광배(光背)처럼 누리에 번지는 그 은은함이란! 그 맑고 투명한 정결함이란!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기꺼이 남의 등 뒤에 섰을 때 더욱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중심에 서고자 한다. 중심에 서서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배경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시샘과 질투, 갈등과 모략이 난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지는 꽃들이다. 누군가는 꽃다발의 중심에서, 누군가는 꽃다발의 뒤에서 피었다 진다. 우리가 살 만한 세상은 중심에 서려는 사람들보다 뒤에 서려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그런 세상은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는 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있고, 지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 그대여, 오늘 하루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등 뒤에 서 보지 않겠는가? 기꺼이 그 사람의 배경이 되어 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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