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전 청주예총 부회장

이곳 중국도 결혼시즌인가 보다. 지난 토요일에는 필자와 함께 근무하는 여교사가 결혼식을 올렸다. 필자는 축의금 봉투를 만들어 전달했다. 동료 교사들 모두를 예식장에 초대하는게 아니라 식이 끝나고 식사 초청한다는 것이다. 초청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혼식을 올린 그날 저녁에 동료교사로부터 결혼한 신부집으로부터 오라는 전달이 왔으니 함께 가자고 하기에 따라나섰다. 아마도 예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은 안간 모양이다. 한 20여 분 걸으니 3층 단독주택이 나오는데, 대문에는 신랑 신부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내용이 적힌 대형 애드벌룬이 떠 있어서, 멀리서 봐도 대번에 잔치집임을 알 수 있었다.

2층 베란다에서 아래로 늘어진 휘황찬란한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어서 한 층 분위기를 북돋운다. 입구에는 손님들이 먹다가 남은 음식물이 질펀하게 깔려있고, 바닥에는 하객들이 버린 잡동사니가 이리저리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아낙네들 십 여 명이 뒤마무리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잔칫집다운 정겨운 정경이었다. 

꼭대기 층에 붉은 색으로 곱게 단장한 신혼 방이 눈길을 끌었다. 신방을 차릴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신랑 친구들은 돌아갈 생각을 하질 않고 북적거린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창호지 문에 구멍 뚫고 신방을 들여다 본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신부는 하루 종일 하객들에게 시달려서 그런지 피곤함이 역력하였다. 타임머신을 타고 4-50년을 거슬러 올라간 기분이다. 풋풋한 인정이 넘쳤던 우리네 전통혼례가 이곳 중국에서 되찾은 기분이었다.  

알고 보니 이 집은 신부 집이 아니라 신랑 집이었다. 낮에는 신부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 무렵이 돼서 이곳 신랑 집으로 온 것이다,  여기에 모인 사람 대부분은 신랑 집 친척들이라고 한다. 사돈에 팔촌까지 친척들이라면 모두 신부를 보러 온 것이다. 집안에 식구가 하나 늘었으니 당연히 와 봐야한다는 것이다. 친척들 간에 우애가 참으로 좋아 보였다.

그동안 필자는 한국에서 치러지는 예식장 결혼식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중국에는 아직까지 결혼예식장이 없다고 한다. 일부 극소수는 호텔에서 올린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신부 집에서 결혼식을 먼저하고 저녁이 돼서야 신랑집으로 신부를 데리고 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혼인(婚姻)이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혼(婚)’이란 ‘저녁(昏)에 여자(女)를 데리고 온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예로부터 혼인을 ‘大事(대사)’라고 했다. 한 개인의 일생을 좌우하는 중대한 일로서 지극히 신성하고 고귀한 행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신성스럽고 고귀함이 점점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혼인을 통하여 집안간의 온정을 돈독히 하고, 혼인의 숭고한 가치를 다지는 이곳의 모습을 보면서 감회가 새롭다. 정겨웠던 옛날 옛적 우리들의 결혼 풍속!  이국에서 향수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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