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 건양대학교 군사경찰대학 교수

대한민국은 참 대단한 나라이다. 6·25전쟁으로 폐허나 다름없었던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에서 65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에 세계에서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으니 말이다. 이를 두고 우리들은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기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해방 당시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에 불과한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해방의 기쁨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가장 큰 민족적 비극에 직면한 것이다. 제대로 된 전쟁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아야 했으니 국가의 운명은 마치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았다.

북한은 분단 이후 곧바로 남한에 대한 적화통일의 야욕을 가지고 전쟁준비에 혈안이 돼 있었다. 사단급까지 모든 훈련을 마치고 소련의 승인을 받아낸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해 전 전선에 걸쳐 기습 남침을 감행하게 된다. 남한은 이러한 북한의 기습 남침 징후를 사전에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기에 평상시와 같이 장병들은 휴일을 맞아 휴가와 외출을 나가고 너무도 평온한 일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전선을 지키는 장병일지라도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하고 전투장비 역시 북한에 비해 턱없이 열세한 상태였다.

심지어 북한의 기습 남침 시 앞장세운 전차를 본 장병이 전혀 없을 정도였다. 전차를 앞세운 북한은 파죽지세로 남진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기에 이르고 40일 여일 만에 부산일대만을 남겨놓고 남한 전 지역이 북한의 수중에 넘어가는 현실이 되고 만다. 부산까지 넘어가면 그야말로 북한이 의도하는 대로 전 한반도가 적화통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국군은 결사항전(決死抗戰) 했다. 마지막 마지노선인 낙동강선 마저 북한에게 넘겨주게 되면 갈 곳은 남해 바다 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학도병들도 책과 연필 대신 총을 들고 사선으로 달려갔다. 장병들은 산더미처럼 쌓여만 가는 전우들의 시체를 옆에서 지켜가며 목숨을 내놓고 전선을 지켜냈다.

그것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자유와 세계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고귀한 항전이기도 했다. 결국 낙동강선은 지켜지게 되고 국제사회의 도움이 이어지면서 한때는 압록강까지 진격해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된다. 안타깝게도 중공군의 개입으로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계속되고 결국은 오늘날과 같은 휴전선이 그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로부터 62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남과 북은 여전히 첨예한 대립과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북한은 휴전 이후 42만여 건에 달하는 휴전협정을 위반해 가면서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다.

얼마 전에는 DMZ일대에서 목함지뢰, 고사포 포격 도발을 자행하고도 여전히 발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목함지뢰 도발 이후 우리 국군장병과 예비군, 그리고 국민들이 보여준 의연한 자세에 북한도 깜짝 놀랐을 것이 분명하다. 장병들은 너나없이 전역을 연기하면서 함께 싸우겠다는 결의를 보이는가 하면, 예비군들도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뛰어갈 준비가 됐다며 SNS에 예비군복과 전투 장비를 올려놓았다.

그동안 수많은 북한의 도발이 있었어도 남한은 크게 대응하지 않고 북한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똑같은 도발을 자행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기를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자신들의 도발행위에 대해 한번도 인정하지 않고 도발을 지속적으로 자행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국군장병과 국민들도 북한의 태도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 남한이 힘이 없어서 당하고만 있었던 것이 아님을 북한은 다시 한 번 명확하게 깨닫기를 바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