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행복나눔협동조합대표이사

TV에서 아름다운 단풍풍경만 나타나면 아내는 어김없이 환호성이다. “여보, 저것 좀 보세요. 어쩜 저렇게 아름다울까? 꼭 그림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아요. 그나저나 올해도 단풍구경 가기는 힘들죠? 지금쯤이면 가까운 속리산도 단풍으로 물들었을 텐데.”하며 내 눈치를 본다.

“여보, 저것은 공중에서 찍어서 저렇게 아름다운 거라오. 저 정도의 경치를 보려면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당신 체력으로는 무리요. 정 단풍구경을 가고 싶으면 당신 친구들하고 다녀오구려” 나의 단호함에 아내는 화가 났는지 휑하니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안 되어 갑자기 보은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 이왕 가는 길이니 아내와 함께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의향을 물으니 아내의 얼굴이 금방 밝아진다. “웬일이유. 다시는 단풍구경을 안갈 사람처럼 말하더니. 어째든 단풍의 절정은 지났지만 그래도 산속이니 남은 단풍이 좀 있겠죠. 무슨 옷을 입고 갈까.” 

속리산을 향하는 도로는 생각보다 한산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단풍철이 끝나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안성마춤이다. 차를 주차하고 법주사를 향하여 올라가니 길옆으로 노점상들이 길게 자리를 잡고 있다. 대부분이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로 그들이 직접 재배한 대추며 사과, 감들을 좌판에 내놓고는 팔고 있다. 아내와 나는 좌판위에 있는 다양한 농산물을 구경하며 힘차게 걸어 올려갔다. 조각공원 끝에 쯤 왔을 때 할머니 한분이 내 손을 잡더니 생대추 몇 개를 손에 넣어 주신다.

“선상님, 장가 잘 갔소. 사모님 얼굴이 아직도 처녀 같소. 그 얼굴 잘 지키려면 대추를 많이 먹어야 하는데. 내가 많이 줄 테니 오늘 마수거리 좀 해 주시오”하며 나와 아내의 얼굴을 번갈아 보신다. 내가 한 봉지를 사자 아내는 얼른 대추 한 개를 입에 넣고는 환하게 웃는다.

오리 숲을 지나자마자 새롭게 건축한 건물이 웅장한 자태를 보인다. 자세히 보니 ‘템플스테이’을 위한 수행처이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마음의 병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종교단체마다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산사의 조용한 곳에서 길든 짧든 자기 삶을 잠시나마 되돌아보고 반성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조금 더 올라가니 상수도원으로 쓰는 저수지가 보인다. 가뭄 탓으로 물이 많이 빠져있어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그래도 깊은 산속이라 그런지 계곡물 소리는 아직 명맥을 잇고 있어 잠시나마 물소리에 취해 본다.

“여보, 이젠 내려갑시다. 우리가 좀 늦게 왔는지 단풍은 별로예요. 그래도 오랜만에 당신하고 이렇게 산속을 걸으니 좋았어요. 아마 인생으로 따지면 우리도 서서히 물들고 있는 단풍인지도 몰라요. 앞으로 이런 단풍구경을 몇 번 더 할지는 몰라도 가끔 당신하고 이렇게 걷고 싶어요” 아내의 조그마한 속삭임은 계곡물처럼 그렇게 흘러간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