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어떤 하나가 생겼다고 하는 것은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어떤 하나가 사라지게 되면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없다 라고 하는 것은 무(無)가 되고 무의 존재는 상징적 의미의 해석에서도 무(無)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본질적으로 무(無)에서 근거를 찾고 생겼다와 사라졌다 의 반복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유(有)가 생겨나기 이전에 무(無)의 존재에서 상황 설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즉, 소나무가 자랄 만한 여건이 형성되었기에 소나무가 생겨나는 것이고 대나무가 자랄만한 여건이 형성되었기에 대나무가 생겨나는 것이며 벌과 나비가 모일만한 여건이 형성되었기에 벌과 나비가 모이는 것이고 구름이 모일만한 여건이 형성되었기에 구름이 모이는 것처럼 생각이라는 유(有)가 사람의 운명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를 무념(無念)이라고 하며 무념의 상황설정이 어떠 하느냐에 따라서 그 생각도 방향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무념(無念)은 한 덩어리의 빛과도 같고 캄캄한 동굴과도 같으며 시간적으로는 연속개념이 없고 공간적 제한이 설정되지 않았으며 상황 설정에도 한계가 없다. 그리고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우주의 본질적 구성요소와도 흡사하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거의 무한대의 무념(無念)을 부여 받았는데 이러한 무념을 어떻게 자신의 념(念)으로 창출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가늠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위와 같은 방안으로는 무념과 념(念)의 연결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협조적이고 교류적이며 상호보완 관계로써 아무런 부작용 없이 이루어 질 것이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심(心)은 무념과 념(念)간의 교류가 원활할 수 있는 여건의 형성에 중요한 고리가 된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부산스러우며 항상 분주한 사람은 념(念)의 활동만이 많아지게 되고 일방적인 념(念)의 활동은 이미 발생한 념(念)의 끝을 몰고 나가서 생각에 생각만을 형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에 일으키는 자신의 생각이 인생에서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몰고 올 것인지는 이미 진행이 된 상태에서 결과로 드러나는 것과도 같기 때문에 아무도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 세상의 일이 그러하듯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세상의 일이란 결과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념(念)도 무념의 세계에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의 결과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운(運)을 지나서 명(命)으로 치닫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무념(無念)의 상태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마치 쌀을 얻기 위해서 논을 만들고 꿀을 얻기 위해서 벌이 집을 만드는 것처럼 참된 생각을 얻기 위해서는 좋은 생각을 일으킬 수가 있는 무념(無念)의 여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무념의 여건을 “갖춘다.”라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마음의 상태를 맑고 선(善)하게 유지하여야 하고 이러한 마음을 고요하게 간직할 때에는 념(念)의 독자적인 활동이 줄어서 번잡한 생각보다도 참다운 생각을 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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