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 경영학과

우리나라 인구분포를 살펴보면 지방인구가 수도권으로 출향하여 서울과 경기도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반이 살고 있고 나머지 반이 지방에 살고 있다. 영호남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미 충청도 인구는 537만1천명으로 호남지역 인구 524만9천명을 앞서고 있다. 영호남이 아니라 영충호(영남, 충청, 호남)라고 불러야 하며 한편 충청도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조선시대 예언서로 대표되는 정감록은 전쟁과 자연의 재해를 피하여 살만한 곳, 십승지지(十勝之地) 10곳을 꼽았는데 10곳 모두가 남한에 위치하고 그 중 3곳이 충청지역에 위치한다. 공주 유구 일대, 보은의 속리산 부근, 단양의 영춘 3곳이 모두 충청지역이다. 전쟁이나 기근, 전염병이 돌아도 이곳에 가면 온전히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일제강점기에 민비살해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격분하여 황해도에서 일본장교를 살해한 20대 젊은 김구선생이 몸을 피신하여 숨어들었던 곳도 십승지지 중 하나인 공주 마곡사였다. 6·25한국전쟁 때 북한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생명을 유지하고자 찾아들었던 곳도 충청지역 일대가 대표적인 피난지였다. 충청도란 의미를 살펴보면 충청은 충주와 청주를 대표하여 충청도라고 하였다. 충주에 가면 대한민국 중심이라는 의미의 중앙탑이 세워져 있다. 청(淸)은 삼수변과 푸를 청(靑)으로 물은 순리, 순수, 순결, 정직, 맑음을 상징하고 청(靑)은 푸르다, 젊음, 봄, 희망을 상징한다. 물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역마성이다. 부지런하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충북은 우리나라의 중심이다. 오행으로 보면 토(土)에 해당한다. 토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조정한다. 충청인에게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조정하는 조정자의 역할이 요구되는데 충청도에서 나라의 지도자, 세계의 지도자가 나와 지역갈등과 인종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충청인은 충청(忠淸)의 의미를 생각하며 자긍심을 가지고 충청인의 상을 정립하고 그에 따른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忠: 중심이 갖추어진 사람, 충성스러운 사람 淸:물같이 모든 것을 씻어주고 부지런하며, 희망을 갖는다)

삼국시대 충청도 공주와 부여는 백제의 수도였고,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은 충청도 진천에서 태어났다. 청주 한씨의 시조 한란은 왕건을 도와 고려 후삼국통일에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유관순 열사 등 독립투사를 많이 낸 고장이었고, 지역 간 갈등이 대두될 때마다 조정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충청도에 도읍을 마련하고자 하였고, 이로부터 60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충청도에 행정도시가 들어섰다.

백두산을 출발한 용맥이 백두대간을 타고 남하하다가 속리산에서 다시 방향을 틀어 서울로 북진하면서 한강물이 충청도 북부지역을 적셔주고, 전라도 장수까지 내려갔던 용맥이 다시 방향을 틀어서 공주 계룡산, 부여 부소산에 이르면서 금강의 물줄기가 충청도 남부와 서부지역 정기를 모아 새로운 행정수도 세종시대를 열었다. 충청도는 산과 물이 모여드는 곳, 영남과 호남, 경기도권에 산천의 정기를 공급하는 중심지역이며 풍수적으로도 나라의 중심역할을 해야 할 곳이다. 따라서 충청도가 영호남을 아우르고 경기, 강원권을 통합하는 충청도의 역할이 영충호 시대의 충청도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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