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십일 째, 남도의 악산 ‘월출산’을 넘다 (전남 영암읍~강진읍)

▲ 남도의 악산이라 불리는 월출산 정상. 지름길로 가려다 여행 중 최고의 고생길이 되었지만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월출산의 웅장한 모습에 가슴 벅차 올라

산행 중 느낀 희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정상에서 제제에게 고맙다는 엽서를 썼다

광활한 산을 보며 부모 사랑을 깨닫는다

 

영암읍에서 강진읍으로 넘어가는 날이다. 지도를 보았다. 827번 국도를 걸어야 한다. 하지만 월출산으로 직진해 산을 넘어간다면 강진읍에 훨씬 빠르게 도착할 것 같았다. 국도로 갈 경우 26km지만 월출산을 넘어 간다면 적어도 6km는 단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암읍내를 벗어나 월출산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카페를 만났다. 장작불이 타고 있는 카페는 주인아저씨 혼자 있었고 아저씨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이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엽서 한 장을 쓰며 아저씨에게 길을 물어봤다.

“월출산 건너편에 도착하면 몇 시쯤 될까요?”

아저씨는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저녁이 돼서야 도착하지 않을까 싶네?” 하셨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나고 초조해졌다. 산속에서 밤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먹던 커피를 종이컵에 옮겨 담고 빠르게 월출산 국립공원으로 출발했다. 계획대로 용기를 내보기로 한 것이다.

“여자혼자 위험하긴 하겠지만 날이 좋아 등산객들이 많을 겁니다.”

아저씨가 남긴 말을 위안 삼아 부지런히 등산객들의 뒤를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실은 오랫동안 반복된 국도 길의 풍경이 지루해지고 식상해진 터에 색다른 루트로 걸어보고 싶은 욕심을 포기 할 수 없었다. 월출산을 넘는 코스는 세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짧은 코스는 구름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이 코스를 선택하기로 하고 월출산 관리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관리소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이 구름다리를 건너는 코스는 얼음이 녹지 않아 길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참 지도를 보고 고민한 결과 구름다리가 아닌 통천문을 지나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속도를 내 올라야한다. 며칠간 들고 다닌 보라색 우산이 산을 오르는데 요긴하게 사용될 줄이야. 지팡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혹시 배고플까 물과 초코파이를 사 배낭에 넣었다.

하지만 초입부터 다시 돌아갈 것을 고민하게 만드는 광경이 펼쳐졌다. 바위들이 앞을 막았다. 내가 생각했던 산이 아니었다. 흙과 나무로 이루어져 빠르게 올라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바위들로 이루어진 산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남도의 악산’이라고 불리는 월출산이란 것을 모르고 출발한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다 국도로 되돌아가기에는 국도에서 벗어나 걸어온 길이 아까웠다. 국립공원을 벗어나 돌아가려면 1시간 이상을 다시 걸어가야 한다. 그냥 올라가기로 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거친 돌투성이의 바위산을 우산과 운동화만 믿고 힘차게 나아갔다.

올라가다 내 또래의 사람들을 만났다. 다들 등산화에 등산용 스틱을 준비해 단단히 무장하고 온 모습이 나와는 너무 달랐다. 그래도 기죽을 수 없었다. 나무와 바위 틈새를 오가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너무나 멋진 전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산 등줄기가 보였고 바위들이 끊임없이 쌓여있는 곳. 올라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웅장한 모습을 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기대도 하지 않았던 웅장한 풍경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 또래의 친구들도 넋을 잃은 듯 펼쳐진 풍경에 감탄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한 친구가 일행들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셔터를 눌러주고 감사의 의미로 초콜릿을 받았다. 이런 작은 교류가 마음까지 충만하게 만들었다. 올라오며 힘들었던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었다. 

통천문에 도착했 때 지도를 보니 월악산 정상인 천황봉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들 정상 쪽으로 가는데 왠지 아쉬웠다. 월악산 정상을 앞에 두고 포기한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 거대한 등줄기를 보고 나니 정상에서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했다. 세 번을 고민하다 조금 늦더라도 정상은 가보고 가자고 결론 냈다. 다시 정상을 향해 산을 올랐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더 악산이었고 아직 녹지 않은 길은 위험하고 가팔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했지만 미끄러운 얼음길을 조심스럽게 가면서 결국 정상에 올랐다.

숨이 탁 트이는 광활한 산 아래를 보며 내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마치 다들 나를 기다린 듯(아니었겠지만) 내가 정상을 밟자마자 축하한다고 박수를 쳐줬다. 나도 그들의 정상정복을 축하해 주었다. 산을 오르며 만난 사람들이다. 라면을 먹고 있던 그들은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국토를 종단하는 길이라는 내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걷는 중에 어른들의 격려와 칭찬이 있었지만 적어도 오늘만은 칭찬받을 만하다는 우쭐함이 생기기도 했다.

잠시 정상에 앉아 경관을 맘껏 바라보았다. 제제가 생각났다. 제제에게 엽서를 한 장 썼다. 무슨 말로 어떻게 기분을 전해야 할지, 고맙다는 말을 썼다. 그런 내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 그 친구들에게 셔터를 눌러달라고 부탁했다. 몇 장의 사진이 내 핸드폰 카메라에 담겼다. 그들이 찍어준 사진을 품에 안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내려간 후 통천문에서 내가 올라온 길 반대편으로 내려 가야한다. 그런데 그쪽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았다. 올라가며 만났던 사람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나만 강진 방향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혼자 반대편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야 한다.

반대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의 굵직한 바위들과는 다르게 자잘하고 뾰족한 바위들로 가득 찼다. 인적도 없고 날은 점점 어두워져 급하게 내려가다 발목을 삐끗했다. 헝겊 운동화 이쪽저쪽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아픈 것도 잠시, 어두워지는데 사람하나 없는 산에 혼자라고 생각하니 두려워졌고 거친 돌덩이 산을 달리다 시피 내려왔다. 숲속의 날씨는 더 빠르게 어두워졌다. 할 수 없이 제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제와 통화를 하면서 걸으니 두려움은 사라졌고 오직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어느새 산 아래로 내려오게 되었고 멀리 주차장이 보이면서 다리의 긴장도 풀렸다. 긴장이 풀리니 제일먼저 배가 고파졌다. 날은 이미 어둑해졌고 주차장 주변을 둘러보니 유일하게 찻집이 눈에 띄었는데 수제비를 판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지금까지 먹어봤던 수제비 중 최고의 맛이었다. 모든 게 다 기적 같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겁 없이 월출산을 오른 것이나, 혼자 산을 내려온 것이나, 모든 것을 끝내고 먹는 수제비의 맛이나 다.

빠르게 가려고 지름길을 택했지만 실제는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어 강진 읍내로 갈 수 없을 만큼 곱의 시간이 지체됐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월출산 정상에서 맛본 희열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무데나 숙소를 잡아 들어가 쉬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하루를 되돌아보는데 산에서 쓴 엽서 생각이 났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딸을 혼자 국토대장정 하도록 허락해준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여행 중에 많이 들은 말이지만 오늘따라 나 역시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오직 제제의 사랑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마미’(자비에돌란 감독)는 엄마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나의 자유로운 성격을 이해해주고 여행을 허락해준 제제와 영화 속 엄마는 같은 마음이었겠지. ‘마미’에서 엄마 ‘디안’과 아들 ‘스티브’는 위태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소년원에 있다가 나온 스티브는 학교에 적응도 못하고 분노조절 장애를 갖고 있다. 영화 속에는 부모가 자식을 포기할 수 있는 법이 있다는 가정이 등장한다. 디안은 스티브와 잘 살아보려고 하지만 스티브는 디안이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였고 그런 아이들을 가둬놓는 요양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 디안은 남편이 죽은 후 힘들게 삶을 살아가는데, 스티브와 함께한다면 둘 다 행복할 수 없다고 판단해 ‘포기’를 결정한 것이다.

자유분방했던 스티브는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이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해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스티브가 유리창을 향해 뛰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lana del ray의 ‘born to die(죽기위해 태어났다)’라는 노래가 나온다. 노래 가사가 마지막 장면과 어울렸다. 어쩔 수 없는, 가장 스티브다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브에게 요양원은 감옥과 같았고 스티브는 엄마에게 커다란 짐이었으므로.

보통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대한다고 생각했고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부모가 자식을 포기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하지만 때로 부모가 자식을 포기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영화 ‘마미’를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관계는 어떤 경우라도 헌신적인 사랑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혹 제제에게 퉁명스럽고 무성의하게 표현되곤 했던 것 같다. 제제의 사랑은 당연한 게 아니고 나만의 특권이었다. 유난히 영화 ‘마미’가 떠오르는 날이다.

 글·사진/안채림

(광운대 경영학& 동북아문화산업과 복수전공)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