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전 청주예총 부회장

중국에서 생활 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었다. 직장이나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추석과 국경절이 겹쳐서 보통 일주일 정도가 휴가라고 한다. 우리네 추석은 온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성묘하는 것이지만, 이곳에선 제사는 지내지 않고 일가친척이 모여 식사만 한다고 한다. 그러면 제사는 지내지 않는가? 그건 한달 전 음력 7월 15일에 지낸다고 한다. 우리로 말하자면 ‘우란분절’이라고 하여 제를 올리는 것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가 보다.

연휴 기간 인근 공원엘 가 보았다. 모처럼 쾌청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려는 듯 형형색색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어른들 손에 이끌려 천방지축이었다. 갑자기 한국의 손자들과 비교가 된다. 목이 말라 생수를 사러 자판기 찾았더니 거기에는 어린이들이 다투며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여섯살쯤 보이는 아이가 탄산음료를 고른다. 부모가 ‘탄산음료는 해롭다’며 제지하니까, 아이는 느닷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벌렁!’ 뒤로 눕는다. 그리고는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체면도 있고 해서 그런지 부모는 아이한테 지고 말았다.  우리네 어린이 중에는 그런 방법으로 떼쓰는 것은 본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우리 어린이들이 훨씬 의젓하고 어른스럽게 보였다.

이곳에선 어린이를 ‘소왕자(小王子)’라고 부른다고 한다. ‘1가구 1자녀’라는 인구 억제정책이 낳은 부작용 때문이란다. 이곳에서도 자녀 교육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길을 가다가 보면 신문명창조, 중화의 꿈, 중화의 영광, 부강민주, 공정법치, 등 국민을 계도(啓導)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도시의 시내버스 승차장에 나의 관심을 끄는 글귀가 있어서 유심히 보았다. 그것은 ‘입가훈(立家訓) 전가풍(傳家風)’이었다. 나는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는 그동안 보배로운 것을 지니고 있다가 언젠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린 것들이 있다. 바로 ‘가훈(家訓)과 ‘가풍(家風)’이 그것들이다. ‘가훈’이라고 하면 한 집안의 조상이나 어른이 자손들에게 일러 주는 가르침을 말한다. 그래서 그것을 그 집안의 전통적도덕관으로 삼기도 한다.

과거에는 학교에는 교훈이 있었고 학급에는 급훈을 있었다. 교실 정면 중앙에는 태극기를 걸려 있고, 좌측에는 교훈, 우측에는 급훈을 다는 게 상례이었다. 이렇게 가정에는 가훈이 있듯이 어느 기관 단체에는 어김없이 ‘훈(訓)’이 있다. 訓(훈)은 어른들의 가르침이다.

필자는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 부지런하면 세상에는 어려울 게 없다.)’라는 현대의 가훈을 좋아한다. 삼성은 ‘경청’이고, LG는 인화(人和:인심이 화합하게 하라)라고 들었다. 그런데 ‘주식하지 말고, 보증서지 말고, 여자 말 잘 들어라’라는 재미있는 것도 있다.

가풍(家風)이란 가훈이 습관화 되어 그 집안의 전통이 되어 내려온 풍습이나 예의범절을 말한다. ‘풍(風)’이란 문화 전통을 말한다. 뛰어난 집안이나 가문에는 어김없이 훌륭한 가풍을 지니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레스’가 명문가의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다. 영국여왕 엘리자베스2세 자신도 2차 대전 당시 군용트럭 운전사로 참가함으로써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라!’는 영국왕실의 전통을 버리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명문가의 가풍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어른들의 가르침이 사라지고 말았다. 어른에 대한 공경은 우리의 전통이요 미풍양속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도 우리의 ‘효(孝) 문화’를  극찬했다. 어른에 대한 권위를 세워서 미풍양속을 살리는 것이 ‘효(孝)문화’다. ‘가훈’이 가족과 집안의 문화로 된 것이 ‘가풍’이다. 우리의 보배로운 문화유산을 이웃나라에서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입가훈 전가풍’, 이것이 우리의 보배로운 것을 되찾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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