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역사나 종교와 같은 전통은 그 민족의 역사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전래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우리가 전통이라고 믿어왔던 풍습 등이 통치 목적에 따라 작위(作爲) 되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조선시대 궁궐인 창덕궁 낙선재 궁 스테이 개방을 두고 내부 개조에 대해 안전문제냐 경제논리를 놓고 갑론을박이다. 문화재청은 역사적 상징성이 있는 낙선재 권역을 외국인 및 CEO를 위한 일부 특정인을 위한 고가의 숙박시설로 운영한다고 한다.  

옛 건물은 사람이 살지 않고 보존에만 급급하면 노후화가 빨리 진행되어 생명력을 불어 넣기 위해 사람이 직접 거주하면서 관리하는 형태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전통이란 과거의 유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또다른 문화도 수십년 내지 수백년의 역사가 흐르면 전통이 되어 가는 것이고 전통은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는 종종 허상이 진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19세기부터 본격화된 민족주의 열풍은 이같은 허상을 양산한 대표적인 주자(走者)라 하겠다. 특히 오늘날 각국은 경쟁적으로 전통문화를 관광상품화하여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소도시 개발정책에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건수가 늘어나고 전통문화를 이용한 특구조성 또한 이러한 맥락이라 하겠다. 금년 7월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건립 예정지 선정에 문자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지자체에서 모두 제안하여 최종 후보지는 인천 송도로 확정되었다.

청주시에서도 초청리에 문자박물관 건립 제안에 응모하였지만 탈락되었다고 한다. 역사성과 경제논리에 밀렸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학술적인 토대가 없었던 점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하겠다.

세종이 초정리에서 한글 창제 마무리를 위해 초정을 찾은 것은 사실이지만 행차 불과 며칠 전 최만리가 상소한 내용에 한글 연구를 위해 초정리로 간다는 기록 외에 더 이상 다른 확증적인 사료가 없는 실정이며 이에 대한 연구도 미미하다. 또한 초정행궁 터 역시 고고학적인 유구가 없어 학계에서는 아직도 행궁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함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경제성만 보고 건립하면 또 다른 전통에 흠이 갈 수 있다.

만일 정확한 고증없이 행궁을 건조하였다가 다음에 본래의 행궁 터가 밝혀져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전통을 따라야하는 지 의문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번 청주시에서는 초정행궁을 복원이 아닌 재현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초정행궁 자리로 추정되는 초정약수 원탕 주변이 일제가 1912년 작성한 토지대장에 왕실(창덕궁) 소유로 명시됐다는 사료에 대한 검증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당시에 일제는 전국토의 절반 이상을 조선총독부 소유로 하기에 앞서 창덕궁 소유로 하였기 때문에 초정 일대 뿐만 아니라 주왕이 마을 부근 역시 창덕궁 소유 토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시대 이전 토지대장인이 있는데 청주지역 양안(量案)과 왕실소유임을 입증할 수 있는 궁방전(宮房田)과 사궁장토(司宮庄土) 등 궁궐 관련 문서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물론 초정원탕의 소재지와 관광 접근성 등 경제적 논리에서는 초정인근 지역이 적합한 지역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불확실한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전통문화 유산이 되는 오류만은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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