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석 시인

초대권을 한 장 드릴까요? 여기는 고요하고 아늑한, 풍광 또한 천하제일인 산정호수랍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주변 산은 신묘한 기암괴석과 미끈한 금강송으로 어우러져 보는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하고, 그곳을 휘휘 돌아 나온 바람은 호수 위에 잠시 머물렀다가 호수의 얼굴에 잔잔한 볼우물을 만들어 놓곤 한답니다. 어서 오세요. 훨훨 날아올라 우리의 손을 잡으세요. 여기에 있는 백조들은 모두 춤의 대가들이랍니다. 어때요, 춤 한번 배워보지 않으실래요?

아, 한 가지 알려드릴 게 있군요. 여기서는 여기만의 춤이 있답니다. 물 위보다는 물 밑 표현을 중시하는 아주 우아하고 귀족적인 춤이죠. 이 춤의 기원은 너무도 멀어서 딱히 언제부터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라니 쓸데없는 질문은 삼가는 것이 좋겠네요. 그냥 세상이 열리던 그 날부터 이 춤이 탄생했다고 보면 돼요.

이 춤을 추기 위해서는 토슈즈(toeshoes)가 필요한데요. 토슈즈는 원래 발레에서 여성 무용수들이 신는 신발이지만, 여기서는 여기만의 율법과 개인의 능력에 따라 저마다의 독특한 모습으로 변형시킨 신발을 의미하는데요. 여성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신고 있답니다. 그 토슈즈에는 기막힌 기능의 물갈퀴가 있는데, 절대 남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되죠. 그게 바로 이 호수에서 오래도록 생존할 수 있는 최고의 비밀 병기이기 때문이랍니다. 누가 더 뛰어난 기능의 비밀 병기를 가졌느냐는 이 호수에서 누가 춤의 고수인가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죠.

어서 오세요. 일단 호수 가장자리에 내려앉으세요. 거기서 당신만의 비밀 병기를 은밀히 제련(製鍊)하세요. 그렇게 두리번거릴 필요 없어요. 비밀 병기를 제련하는 비법은 철저한 비밀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을 거예요. 오직 혼자의 힘으로 터득해야 하는데요. 잠깐만, 당신은 내게 호의를 보였으니 한 가지만 귀띔해 드리죠. 아주 맑은 날 집중해서 다른 백조들이 춤추는 물속을 들여다보세요. 그러면 백조들의 발이 조금은 보일 거예요. 그때 그 기술을 잽싸게 읽어낸 다음 거기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여 당신의, 당신에 의한 당신을 위한 비법을 완성하세요. 여기에 있는 백조들은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쳤답니다. 당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죠.

비밀 병기인 물갈퀴가 완성되었으면 이제 호수의 가운데로 나오세요. 그러나 당신의 발을, 물갈퀴를 절대 남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답니다. 당신의 희고 아름다운 날갯죽지로 그것을 가리세요. 물갈퀴질이 현란할수록 당신은 만족하실 테지만, 그만큼 힘도 들 거예요. 그러나 겉으론 아무 일 없다는 듯 온화한 미소만 지으세요. 쓸데없이 다른 백조들과 말을 주고받지 마세요. 자칫하면 비밀이 탄로나 머리를 쪼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그저 넋 놓고 웃고만 있어서는 안 되죠. 웃고는 있지만 항상 다른 백조들의 춤사위에 신경을 써야 해요. 우리는 그것을 마임(mime-무언극)이라 부르는데요. 상대가 보여주지 않는 물 밑 세계를, 상대가 들려주지 않는 비밀 노래를 눈치 하나로 알아내어 재빨리 거기에 스텝을 맞춰야 하는 등에 진땀이 나는 춤의 일부죠. 그러나 춤의 궁극(窮極)은 그 단계를 뛰어넘어 다른 백조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신기술을 구사하는 것인데요. 그 기술의 개발을 위해 오늘도 수많은 백조들이 불철주야 물속 물갈퀴질 연마에 여념이 없답니다. 

어쩐답디까. 그것이 이곳의 불문율인 걸요. 그런 긴장된 평화가 이 호수를 천하제일로 만든답니다. 어때요, 이제는 함께 춤추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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