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십칠일 째. 어른들의 특권이 부러운 10대 시절(전남 장성군 북이면 백양사역~광주시)

▲ 장성군 북이면에서 장성읍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하천.

철 없던 시절 호기심에 했던 행동

훗날 후회되고 부끄러워 할 수도

청춘의 상처, 마음 열면 치유 가능

 

백양사역이 있는 전남 장성군 북이면에서 하루를 같이 보낸 제제는 내게 나름의 설을 보내게 해주고 다시 집으로 떠나야 한다. 제제는 아무래도 딸을 남겨두는 것이 편치 않은지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백양사역에서 기차를 타고 떠나기로 했는데 기차표를 다시 반납하고 전남 장성까지 한나절을 함께 걷기로 했다. 점심이라도 같이 먹고 떠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빵과 커피로 아침을 간단하게 먹기 위해 마땅한 장소를 찾는데 북이면 버스정류장 안에 다방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드라마에서나 보던 70,80년대 다방 풍경이 고스란히 재현된 것 같았다. 나보다 제제가 더 좋아했다. 다방에는 이른 아침부터 몇몇 노년의 남자들이 다방 종업원인 듯한 언니들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누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은 아니었다. 우리는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까 하다 마침 아메리카노 커피가 테이크 아웃 된다는 말에 두 잔을 사들고 나왔다. 왠지 손님들에게 우리가 불청객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내 작은 동네들만 지나다가 오늘은 대도시 광주시에 들어서는 날이다. 광주시가 너무 커서 광주시를 벗어나기에도 한참이 걸릴 것 같았다. 어쨌든 지나가야 하는 길이다. 한손에는 커피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빵을 들고 먹으며 걸었다. 북이면을 벗어나 장성군 북일면으로 접어들었다. 제제는 여전히 하천을 따라 난 농로 길을 좋아했다. 농로 길을 걷다 길이 막히면 다시 국도로 들어서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북이면을 벗어나 북일면까지 다다랐다. 북일면에서 문암리 금곡영화마을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보았다. 네이버로 검색해보니 오지마을이어서 금곡마을까지 다녀오려면 한나절은 걸려야 했다. 하루하루 정해진 양만큼 걸어야하는 나로서는 이럴 때 난감하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데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오지마을을 지나쳐 가야 하는 속상함. 할 수 없이 다음기회로 미뤄두었다. 이렇게 미뤄둔 여행지가 너무 많이 쌓여가고 있지만.

장성역이 있는 읍내로 들어서니 시골 역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여느 시골 역답게 역 앞에는 오래된 다방과 호프집,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제제를 역으로 데려다 주던 길에 골목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아무리 봐도 중학생밖에 돼 보이지 않은데 한 여학생이 술에 취했는지 몸을 가누지 못했고 주변 친구들이 그 여자아이를 돌보느라 애쓰고 있었다. 여학생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낮부터 술을 마신 것인지, 그 나이에 술은 어디서 샀을지, 안쓰럽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제제와 같이 보면서 민망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나왔다. 내 중학생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저 나이 때는 어른들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호기심이 가득할 때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정말 성인이 된다면 모든 것들이 후회되고 부끄러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술을 마셔보지는 못했지만 어른들만 누리는 일종의 특권들이 질투 났던 10대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장성역에서 제제를 배웅했다. 언젠가 내가 걷기를 시작했을 때 제제는 내게 카톡으로 누군가의 글이라며 복사해 보내준 적이 있었다. ‘걷지 않으니 추억이 없고 그래서 늙는 것이다…’라는 글이 담긴 내용이었다. 제제가 생각하기에 내가 국토대장정을 하는 이유에 대해 ‘추억을 만들기 위한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1박 2일간 제제와 함께한 여행이 내게는 물론 제제에게도 특별한 추억이 되기를 바랐다. 제제는 기차역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꾸만 나를 돌아보았다. 제제가 기차에 오르고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나는 서둘러 광주로 향했다.

광주로 가는 길에 4차선 넓은 도로를 지나쳐야 했다. 길이 위협적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순찰차가 다가와 경찰아저씨가 위험하다고 농로로 내려가라고 했지만 그러다 어둠 속에 갇힐 것 같은 불안 때문에 지름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찰아저씨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조심해 가라’는 말만 하고 내 곁을 쌩 달려 지나쳐 갔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빠르게 걸었다. 어두워져서야 광주시에 도착했다. 도시에 도착하니 조금은 안심이 돼 잘 곳을 찾기 시작했다. 연휴여서 그런지 모텔들이 너무 비싸 하루 더 찜질방에 묵기로 했다. 찜질방에 들어가기 전에 저녁 먹을 곳을 찾았다. 그 동안 있던 도시들 보다 화려함의 위압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제제와 함께 있다 이 큰 도시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쓸쓸해지는 것일까. 

문득 광주가 고향인 학교 동기가 생각났다. 군대에 간 이후로 연락도 뜸해지고 간간히 연락만 하던 친구다. 연락을 해보니 광주란다. 벌써 전역해 지금은 휴학기간 동안 일하는 중이라는데 어느새 그 친구를 만난 게 1년 반이 지난 것이다. 같이 학교에 입학해 아무것도 모르고 놀기만 하던 그때와 다르게 그 친구는 일을 하고 있고 나는 걸어서 여행 중이다. 둘 다 늘 어린 철부지일 줄 만 알았는데 혼자서 뭐든 하고 있는 모습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걸어서 해남까지 간다하니 역시 웃기 바빴다.

사실 이 친구는 학교생활에 그다지 적응을 잘 하던 친구가 아니었다. 늘 밖으로 돌거나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어쩌다가 친해지게 되고나서 들었는데, 학교친구들한테 정을 주기가 힘들다는 말을 했다. 분명 놀기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던 친구인 것은 맞는데 대학에 와서는 친구들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다들 성인이 되고 나서 만나는 친구들이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친구가 되기보다는 하나둘 따져가며 친구가 되는 모습이 그 친구에게는 낯설었던 것 같다.

‘불량품들의 섬에 온 것을 환영해’ 라는 대사가 인상적인 영화가 있다. ‘월 플라워(스티븐 크보스키 감독)’가 그 영화다.

찰리(로건 레먼)는 과거의 상처로 인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방학동안 병원에 있다 돌아온 그에게 학교는 낯설기만 하다. 오래된 친구의 자살로 친구하나 없는 곳에서 학교 친구들과 친해지려 해보지만 모든 게 어렵기만 하다. 그러던 중 학교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샘(엠마 왓슨)과 패트릭(에즈리 밀러)을 만나게 된다. 그 둘은 이복 남매로 세상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다. 샘과 패트릭은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찰리를 자신들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 곳의 학생들은 모두 한 가지씩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밝고 독특하게 살아간다. 학교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학교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어쩐지 광주에서 왔다는 내 친구와 닮은 부분들이 많다고 느껴졌다.

유쾌하지만 쓰라리고, 지치지만 빛나던 청춘의 기억을 담은 영화는 다르지만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키워가는 10대들의 이야기이다. 10대의 끝에서 성인이 돼가는 과도기에 있는 주인공들의 갈등을 다룬 ‘월 플라워’는 모든 청춘들의 고민을 상징하는 영화여서 유난히 가슴에 남는 영화다. 결국 찰리는 친구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간다. 대학생이 된 후 어쩌면 10대였을 때 느꼈던 모든 고민과 갈등, 이상과 꿈을 잊고 살아오진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다.

광주의 친구는 10대에 꿈꿔오던 것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대학에 왔지만 현실에 안주해 있는 다른 친구들을 보며, 혹은 자기 자신에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을 부정하려는 자신이 그 속에 섞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찜질방이 꽤 커서 그런지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시끄럽기도 하고 낮에 장성역 앞에서 보았던 여학생의 몸부림이 잊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10대시절의 몸부림을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자꾸만 마음속을 맴돌았다.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은 밤이다.

 글·사진/안채림

(광운대 경영학& 동북아문화산업과 복수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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