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중국 고전을 읽을 때 혼란을 겪는 것은 판본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판본마다 글자가 다르고 심지어는 문장도 다른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다면 그 고전의 가장 정확한 뜻을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주 한심한 질문이죠. 원본을 확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원본 확정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판본에서 시작되어 어떤 판본으로 옮겨갔는지를 알아내야 하는데, 워낙 오래 전의 세월이라서 그것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청나라 때에는 훈고학이 발달하여 판본확정에 굉장한?발전을 이루었지만, 그래도 요원합니다. 청나라 때 이루어놓은 그 업적도 마왕퇴에서 나온 비단 책 때문에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여기서 질문을 멈추었습니다. 답을 찾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고전들을 번역한 여러 책들을 찾아보는 걸로 의문을 달랬습니다. 그러다가 기세춘 선생의 글을 읽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런 판본 확정의 어려움을 그도 인식하고 나름대로 해결하는 방식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경전으로 경전을 본다는 것이 그의 방법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간단한 방법입니까?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제 대가리가 나빠서 그렇다는 결론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머리 나쁜 놈이 공부에도 게을러 오늘날까지 허송 세월한 셈입니다.

한자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뜻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 전에 쓰여진 고전들을 오늘날의 한자 뜻으로 해석하면 엉뚱한 뜻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문 문장을 해석할 때는 거기 쓰인 한자들이 다른 경전에서는 어떤 뜻으로 쓰였는가를 파악한 다음에 해석에 응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에 말을 한 사람들의 뜻에 한결 더 가깝겠죠. 우리가 원본을 확정할 수 없다고 할 때 그 다음 방법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기세춘 선생은 이렇게 해서 노자와 장자를 읽고 번역했습니다.

노자의 경우는 이미 번역된 책 중에서 대표할 만한 것을 넷 골라서 그들의 번역과 자신의 번역을 비교해놓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원전을 이해하는 사람의 수준과 능력이 한 눈에 드러나서, 사실은 지은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법을 이 책의 저자는 썼습니다.

장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번역본을 읽다보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잠이 옵니다. 특히 뒤로 가면서 그렇죠. 이유는 번역을 잘못한 것도 있지만, 원래 의미가 있는 것을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해서 글 전체의 방향과 어긋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원본의 확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완벽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이 정답에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번역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내용이 애매모호한 경우가 없어서 대부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내용이 어려우면 어려웠지 번역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이런 좋은 번역 책이 나온다는 것도 뒤늦게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축복일 것입니다. 앞선 사람들처럼 헤매지 않아도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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