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선 청주청원도서관 사서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이름을 증여받는다. 어른들은 이름대로 인생을 산다기에 이름을 함부로 짓는게 아니라며 몇 달 전 태어난 작은 아이의 이름을 짓느라 밤새 작명책을 뒤적거린적이 있다. 과연 사람은 이름대로 살까? 아니면 사람의 성품이 이름을 낳을까?

이번에 소개하는 책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은 정약용, 이이, 김홍도, 이황, 정도전, 박지원, 김시습, 정조 등 조선의 역사를 이끌어간 천재들의 호를 최초로 분석하고 집대성한 책이다.

그들은 세상에 초연해지고자 하는 바람과 세상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짐을 ‘호’에 담아서 표현했다.

조선 선비들의 호를 분석해보면 ‘율곡’ 이이나 ‘연암’ 박지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지명을 호로 삼거나 ‘퇴계’ 이황이나 ‘초정’ 박제가처럼 마음에 품은 의지를 호로 삼은 일이 많았다. ‘매월당’ 김시습이나 ‘단원’ 김홍도처럼 취향을 호로 삼기도 했으며, ‘표암’ 강세황처럼 생김새를 드러낸 경우도 있었다. 유몽인은 ‘쓸데없는 소리로 사람들을 현혹한다’고 자신을 희화화해서 ‘어우당’이라고 짓기도 했다.

조선을 뒤흔든 36명 선비들의 호를 통해 그들의 삶과 철학, 내면 깊은 곳의 사상적 고민들까지 재조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태생적 배경에서부터 삶의 과정, 학문의 기틀은 물론 작호의 근거가 되는 방대한 분량의 시문까지 옛 문서들을 분석해 현대적으로 풀이하고 재해석했다. 또한 저자는 조선의 선비들 뿐만 아니라 국어학자 한샘 주시경 선생부터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근현대사 인물들의 호와 그 의미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름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와 의지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징표다.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고 훗날 자신의 이름이 어떤 의미로 기억될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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