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 충북예술고 교사

1970년대 학창시절을 겪으면서 읽은 소설 중 재미있었던 것은 중국의 4대 기서인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류였습니다. 그런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훌륭한 소설이 없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쉬움은 분단으로 인한 비극이었다는 것을 1980년대 해금되었던 작품들이 풀리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 ‘임꺽정’도 1980년대 들어 전두환 정권의 유화책으로 인해 해금된 책 중의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판금된 책이 없지만 한국 전쟁 후에는 우리가 접할 수 없는 책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정말 일상생활에서 보지 않을 수 없는 책들은 엉뚱한 사람의 이름으로 발행되어 시중에 나돌곤 했습니다.

그 당시 학교 정문 앞에 자주 가던 책방이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까 밴 꼭대기 칸에 이 소설 9권이 나란히 꽂혀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머니를 탁탁 털어서 샀습니다. 그리고 소설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정말 낱말 하나하나가 입에 짝짝 달라붙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몸짓을 담아내기에 우리말이 얼마나 휼륭한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작품이어서, 한 쪽 한 쪽을 넘기기가 아까울 지경이었습니다. 삼국지나 수호지의 경우, 그 줄거리만 전해지는데 반해 이 소설은 줄거리가 전해지면서 동시에 그것을 전하는 말하는 이의 말재주까지 느껴집니다.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묘사에 동원된 말이 하도 맛있어서 사전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소설에 쓰인 낱말을 모두 정리해서 가나다순으로 배열한 다음 간단한 용례를 적어두는 것입니다. 그 작업을 손으로 한 다음에 타자기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한 15년이 지난 뒤에 보니 실제로 임꺽정 소설사전이 나왔더군요.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구나 하는 묘한 느낌이 왔습니다. 어쨌든 그런 경험으로 우리말을 이해하는 수준이 한층 더 깊어졌다고 저 스스로는 믿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1928년부터 10년간 조선일보에 연재된 작품입니다. 그러다가 해방후에 을유문화사에서 4권짜리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작가인 홍명희가 월북을 하면서 남한에서는 금서가 되었다가 1985년에 출판됩니다.

1990년대 초에 우리 어머니가 병원에 한 열흘 입원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심심할 듯하여 이 소설을 갖다드린 적이 있습니다. 병문안을 온 외삼촌이 그 소설을 대뜸 알아보시더군요. 옛날에 많이들 사서 읽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은 책이었음을 그렇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분단은 곳곳에서 우리의 상처로 남았고, 그 분단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못난 짓들을 일삼으며 살았는가 하는 것을 이런 풍속사 쪽에서 확인하는 것은 정말 씁쓸한 일입니다.

아울러, 중국의 4대기서 중 하나인 수호지를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홍명희가 연재를 시작하면서 밝힌 바입니다만, 그 서술 체계와 구조가 비숫합니다. 그래서 같은 틀을 쓰면서 두 소설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큰 재미입니다. 수호지의 틀을 빌리면서 수호지와 달라지려고 한 지은이의 상상력과 힘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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