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비다운 비도 없던 여름 장마가 끝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 살인적인 무더위가 한반도를 뒤덮는다. 담장 위 호박잎도 축 처진 채 맹렬한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다. 사람의 체온과 비슷하게 기온이 올라가니 더위에 약한 축사 속 짐승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열사병으로 쓰러져 죽음에 이른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봄부터 시절이 뒤숭숭하더니 이 여름날엔 폭염까지 합세해 세상을 극렬하게 괴롭힌다.

올 여름은 대지의 열기를 식혀주는 소나기도 하늘에서 인색하다.

여름날 우산 준비도 없이 소나기를 만나 그 비가 어서 지나가기를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비를 그으며 기다렸던 기억이 무색하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친한 동생 G가 더위를 피해 서원도서관에 책을 빌리려 왔다가 발견했다며 손 폰으로 안내 팸플릿을 찍어 SNS로 보내 왔다.

이미 1차 강좌는 끝났고 2차 강좌를 이어서 시작하는‘인문 독서 아카데미’다.

‘고전의 산책길에서 문장과 철학의 대가들을 만나다’라는 주제아래 4차 강좌까지 있다. 6월부터 시작한 강의는 고전읽기를 통해 현재 우리의 자리를 돌아보는 인문학 교양강좌로서,10월까지 이어져 있다.

18세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귀족사회 중심의 문화에서 시민사회 중심문화로 변화하는 격정의 시대였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시민 대혁명’이 일어났고, 조선에서는 특권층인 양반 문벌 귀족들을 은유적으로 신랄한 풍자와 비판을 하는 서얼출신 선비들의 다양한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조 임금은 정치 경제 및 여러 사회전반에 걸쳐 널리 그의 덕치를 펼쳤다. 실학파들을 중심으로 몸소 실천하는 실사구시 사회 구조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만연하였다.

그 중심에 북학파의 가장 영향력이 있던 ‘연암 박지원’이 있다.

지금 종로2가에 있는 탑골공원안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중심으로 글과 사상이 비슷한 연암 친구들을 ‘백탑 파’라 명했다. ‘백탑파’는 18세기 한양의 진보적 북학파 지식인인 박제가,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홍대용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다. 하얀 대리석으로 탑을 만들었기에 백탑이라고 명칭 했고, 이 사내들은 탑 주위에 모여 살면서 한번 집을 나서면 한잔 술에도 시 문답을 하며 여러 친구 집을 전전했고, 심지어는 몇 달씩 어울려 풍류로 시대의 울분과 아픔을 공유하며 향기로운 그들만의 첨예한 문화를 만들어갔다. 오죽하면 정조는 이러한 선비들의 글이 정통 문체에 위배된다하여 벌을 주고 책망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몇몇 배포 큰 사내들은 더 큰 반항심으로 글들을 써 세상을 향해 일갈을 가하곤 했다.

철저한 출신 신분주의 차별로 벼슬길이 차단된 서얼출신들의 생활은 비천하고 가난했지만, 기백들만큼은 대숲의 바람처럼 청청했고 기존 중화사상에 물들어 있던 보수 선비들의 구시대적인 답습이 아닌 새로운 문체로 참신한 글들을 후대에 남겼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의 득세는 변함이 없으니, 승자들의 역사는 늘 반복이다.

이 여름 고전의 숲에서 그들 눈높이로 소리 내어 글들을 함께 읽고, 그들의 향기를 맡아 보는 것이 그나마 이 여름 속 최대의 더위를 쫓는 피서의 한 방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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