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책을 덮으면서 행복한 느낌이 생기는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행복은 감정인데, 책은 이성을 각성시키는 노릇을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1주일 동안 꼬박 읽은 원불교 전서를 덮으면서 마음이 아주 행복했습니다.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도 그렇고, 이런 책의 주인공이 우리나라에서 났다는 것도 그렇고, 이런 가르침이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원불교는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소태산 박중빈으로부터 시작된 종교입니다. 죽음 체험을 한 소태산이 과거 보러 가는 나그네의 대화에서 나온 주역의 구절이 쉽게 이해되는 것을 보고서 깨달음을 스스로 확인하고는 포교를 시작한 이래 불과 1세기도 되지 않아서 한국의 4대 종교로 성장했습니다. 이 책은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이 남긴 말씀과 그의 가르침, 그리고 행적을 정리한 책입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그 오묘한 세계를 모르는 중생들이 불쌍하여 그들에게 말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그 말이 도움이 될까 하여 말도 하고 글로도 쓰죠.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수록 대중들의 무지한 정신은 그 말을 오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악 영향을 끼치는 수가 많죠. 소태산 대종사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자신이 지은 글과 책을 모두 회수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부분만 뽑고 정리해 이 책을 만듭니다. 저는 글쟁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 부분에서 가슴이 찡했습니다. 대부분 말을 많이 해서 탈을 일으키거든요. 자신이 냈던 책을 회수한다는 것은 정말 보통 마음으로는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여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정본만을 남긴다는 것은 참 하기 힘 든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소태산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거두어들일 줄 아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을 얻은 인연도 밝혀야겠습니다. 오래 전부터 원불교 교전을 읽고 싶었는데,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주변에 아는 원불교신자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진천의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노인 복지시설에 침뜸 봉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곳의 원불교 사무국장에게 이런 사정 애기를 했더니, 그분들도 구해서 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때 묻은 책을 한 권 주더군요. 자신이 보던 책이랍니다.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받아온 그날부터 꼬박 1주일 걸려서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돌려주려고 몇 차례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은 아직까지 돌려주지 못했습니다. 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들어서 더욱 돌려주기 힘들게 됐습니다. 원불교는 이름 때문에 불교의 한 종파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이름만 같을 뿐, 창도 과정이나 전파과정은 기존의 불교와는 상관이 없는 종교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후에 자신이 깨달은 내용이 부처의 깨달음에 가장 가깝다고 해 원불교라고 이름 붙인 것일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이 닮은 부분이 많아서 실제로 불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원불교 자신이 세계 불교 인들의 모임에도 참여하니, 스스로도 불교의 한 갈래임을 인정하는 셈입니다. 뿌리는 달라도 몸통이 붙은 연리지라고나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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