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전 청주예총 부회장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세계가 있고 삶의 질향상을 위해 자기 나름의 취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틈만 나면 운동으로 체력을 비축한다. 특히 테니스는 광적(狂的)이다. 지금도 눈만 뜨면 테니스로 하루를 열어간다. 그런 이유는 테니스가 어렵다는데 있다. 배드민턴도 쳐보고, 스키도 타 봤지만 테니스는 어렵다. “한 나절만 배워도 탈 수 있는 게 스키(sky)이고, 다섯 달만 배워도 필드에 나갈 수 있는 게 골프”라고 한다. 그런데 테니스는 30여년을 죽기 살기로 쳐도 잘 안 된다. 참으로 야속하다. 그런데 요즈음은 행복하다. 그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에 통달해 자신이 생겼을 때 ‘물미가 트였다’고 한다. 나도 테니스에 ‘물미가 트인’ 셈이다.

테니스에 ‘물미가 트인’ 계기가 좀 엉뚱한데서 찾았다. 그것은 예초기(刈草機)다. 공원의 잔디밭에서 ‘윙~윙’하며 소음을 내며 풀을 깎는 기계를 예초기라고 한다. 얼마 전 나는 산소에서 벌초를 하며 그 원리를 터득했다.

칼날이 도는 원심력에 의해 풀을 베는 것이 예초기다. 막대기 끝에 달린 원형으로 된 프로펠러 칼날을 풀에다 대면 신기하게도 풀이 스러진다. 자칫 칼날에 돌이 닿기라도 하면 돌이 튀거나 칼날이 부러져 사람을 다치기 십상이다. 막대기를 오른 손으로는 지렛대를 삼아 왼손으로 조절하며 풀을 베려면 잠시도 정신을 놓을 수 없다. 작년에는 어찌나 팔이 힘이 들었던지 작업이 끝나고 식사를 할때는 밥숟가락을 올라가지를 않았다.

금년에도 일년만의 작업이라 지난해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조심조심 기계를 익혀 가는 중 섬광(閃光)과 같이 문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테니스’였다. 그러면서 테니스에서 배운 원리를 예초기에 적용해 보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야호!’ 나는 예초기를 놀리면서 쾌재를 불렀다.  자신이 붙고 요령이 생긴 것이다. 물미가 트인 셈이다. 나도 예초기에 ‘물미’가 트인 셈이다.

테니스는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고 한다. ‘사람과 라켓과 공’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삼위일체’지 30년을 하루같이 열심히 해도 좀처럼 되지 않는 것이 테니스다. 이날 작업을 하면서 문득‘삼위일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 ‘삼위일체’를 여기 예초기에 적용해 보았다. “그렇다, 기계와 내가 하나로 되는 것이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잡은 팔은 그대로 두고, 자세를 낮추고 가급적 다리만을 이용해 칼날을 조정해 봤다. 그랬더니 의외로 힘이 덜 들고 작업도 수월해 졌다. “아! 나와 기계가 하나가 되면 이렇게 대상(풀)과도 하나가 되는 구나! 이게 삼위일체란 것이구나!”라며 쾌재(快哉)를 외쳤다.

그 후 집에 돌아와 테니스장으로 달려가 예초기를 다룰 때 동작을 더듬으며 테니스에 그 동작을 적용해 보았다. 나는 더욱 놀랐다. 30년 동안에 풀지 못했던 문제를 단번에 해결되는 기분이었다. 테니스 원리를 예초기 적용해 물미가 통하더니, 이번에는 예초기를 통해 테니스의 물미가 통하게 됐다. 만법일여(萬法一如)라는 말이 있다. 세상사 모든 이치가 결국은 하나로 돌아간다. 하나로 되는 것! 즉 일여(一如)가 답이다. 나는 테니스를 통해 예초기를 알게 됐고 예초기를 통해 테니스를 알게 됐다. 결국은 하나로 된 것이다. ‘일여’가 되면 ‘물미’가 통한다.

이것이 ‘소통과 융합과 통섭’이다. 나는 이것(一如)을 체험을 통해 터득하게 됐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 있는 것을 호환(互換)’이라고 한다. 호환을 통해 소통이 되고 그러면 하나로 융합이 된다. 테니스와 예초기가 융합해 시너지 효과를 거둔 셈이다. 이렇게 융합과 시너지 효과를 통해 인류는 발전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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