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직장 생활만 하던 큰언니 내외가 쫓기 듯 시골에 들어가 생활 한지도 햇수로 6년째다.

도시에서 태어나 대부분 이곳서 세월을 보낸 언니가 시골 생활을 시작한 것은 형부의 정년퇴직 후 갑자기 큰 경제적 손실이 있고 부터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때마침 딱한 사정을 들은 친한 지인이 시골집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었다.

편리한 아파트 생활만 하다가 시작한 낯선 시골이 처음부터 몸에 익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햇수가 보태지면서 시골생활에 재미를 붙인 부부는 이제는 도시생활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는다.

결혼해 서울서 일가를 이루고 직장 생활을 하는 큰 조카의 아이들도 시골 할머니 집에 내려오는 것을 좋아한다. 풀과 꽃들이 어우러진 집 주위와 코 앞 냇가가 아스팔트 위에서만 자라고 있는 서울 동심에게는 풍요롭고 정겹기 때문이다.

집 주위엔 나물 반찬으로 해 먹을 수 있는 잡초들이 지천이다. 그 지천 속에서도 주로 언니는 봄이면 여린 쑥을 부지런히 뜯어 말려 우리 형제들에게 나눠준다.

쑥은 여러 가지로 우리 몸에 좋은 약초다. 그 약성 중에서도 살균력이 강해 어린 날 가려움증으로 몸에 탈이 나면 쑥 삶은 물로 몸을 닦곤 했다.

어디 그뿐이랴! 여름날 방부제 쑥을 잔뜩 넣고 쌀가루와 버무려 동글납작하게 만든 개떡을 쪄서 대 바구니에 담아 대청마루 끝에 매달아 놓으면 어린 형제들은 들락날락 곰 쥐처럼 오가면서 집어먹곤 했다.

사물의 이름 앞에 ‘개’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어딘지 모르게 품격이 떨어진다.

떡은 떡인데 좀 품질이 떨어지고 모양새도 아무렇게나 빚어 만들어 그런 이름이 붙었지만, 쑥 향이 진한 쫀득한 식감은 훌륭하다. 다른 여타 떡 하고 비교를 해도 내 입맛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큰 가마솥에서 허연 김을 내품으며 차지게 쪄진 쑥 개떡을 찬물에 연신 손을 담그며 꺼내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느 정도 한 김이 나가고 난후 참기름을 발라 대나무 채반에 차곡차곡 쌓아 놓으면, 하루 이틀사이에 동이 나곤 했다. 먹거리가 귀한 시절이었다. 먹을 것이 지천인 지금은 일부러 찾아 먹는 건강한 간식거리가 됐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자주 시골 언니 집에 가는 내게 몸이 바지런한 언니가 쑥 개떡을 만들어 별미로 내온다. 마침 조카손녀딸까지 내려와 있어 자연스럽게 마당가 평상에 앉아 쑥 개떡을 하나씩 들고 화기애애해진다 . 요즘 아이들 입맛에는 맞을 리가 없는데 의외로 잘 먹는다. 오히려 내가 그 아이들을 신기해한다.

어릴 적 시골 동네에 지독히도 가난했던 친척 아제가 있었다. 병약한 아내에게서 늦게 얻은 여자아이는 얼굴에 핀 버짐에 눈만 퀭했다. 아이는 어미젖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서인지 영양실조로 다리가 휘었고, 걷지 못해 제 오빠 등에 늘 업혀 있기 일 수였다. 어느 날인가 얼마나 울었는지 짐승의 쉰 목소리를 내던 앙상한 아이의 손에 쑥 개떡을 쥐어 줬다. 그러나 아이는 그 개떡을 제대로 한입 물어 먹지도 못하고 힘없이 들고만 있었다.

얼마 뒤 마을에 큰 홍역이 지나갔고, 그 후 아이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쑥 개떡을 보면 그것을 힘없이 들고 있던 야윈 여자아이의 손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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