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TV 방송프로그램 중에 가장 즐겨 보는 것은 아침 정규방송에서 일주일에 5부작으로 매주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지난주 방송은 두 부부와 7명의 아이들이 더불어 사는 사랑의 가족 이야기다. 그런데 가족 구성원이 좀 특별하다. 직접 낳은 2명의 자식과 가슴으로 낳은 5명의 자식으로 이뤄진 이 가정은 기쁨 바이러스가 날마다 샘물처럼 퐁퐁 솟는다.

중장비 서비스 센터를 홀로 운영하는 가장은 밤낮없이 식솔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 일의 여건상 기름때가 온몸에 범벅이 되는 험하고 위험한 일이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그의 얼굴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가장은 가족을 위해선 기꺼이 하나의 밀알로 썩어 온전한 싹을 틔우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고, 남은 생의 목표가 제대로 썩는 것이라 말한다. 그의 아내 또한 고만고만한 초등생들과 유치원생들, 그리고 젖먹이 아기까지 건사를 하고 있다. 날마다 아이들이 일으키는 작은 분란과 말썽도 다 살아가는 기쁨으로 알고 고단한 일상을 축제처럼 즐긴다. 가슴으로 아이들을 낳은 후부터 부부는 큰집, 비싼 자동차를 가지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니다. 부족하고 가난하지만 아이들과 얼마나 많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인지, 또한 어떻게 그들을 따듯한 사랑으로 보듬어 키울 것 인지가 최대 관심사일 뿐이다. 처음부터 공개 입양으로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아이들을 성장 시켜주고 있다. 아이들이 부족해도 질책보다는 격려와 칭찬 일색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그들의 두 친자식들도 격이 없이 동생들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부모 모습을 실천하려 한다.

동창 E가 며칠 전 미국서 왔다.

매년 그녀는 한 달씩 한국에 와 머물다 간다. 미국서 살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홀로 사는 구십 노모의 안위가 걱정이라 이제 그녀의 방문은 연례행사이다.

올해는 성년이 된 아들 둘까지 데리고 왔다. 외할머니의 살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반 협박으로 두 아들을 대동한 것이다. 몸만 한국 사람이지, 미국서 태어나 30년 가까이 살아온 청년들은 이제 미국 시민이라는 것을 그냥 봐도 느낄 수 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그들은 어머니의 향수병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짐작할 수 없다.

청소년 시절 E의 방황은 질풍노도였다.

드라마 소재에 자주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 주인공처럼 그녀의 생모는 지금 노모가 아니다. 자신이 입양 됐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그녀의 방황은 걷잡을 수 없었다. 자애로움보다는 엄격주의자였던 지금의 어머니는 그녀를 자신이 짜 놓은 계획안으로 몰아넣으며 질책하는 것이 전부였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자신에게로 왔다고 생각한 그녀는 엇나갔고,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종당엔 노모가 없는 다른 세상으로 좇기 듯 도망쳤다.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을 것 같던 한국 땅과 그녀의 노모를 찾게 된 것은, 그녀도 일가를 꾸려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점차 가슴속으로 뼈저리게 회한이 밀려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노모의 곁에 머물고 싶어도 미국서 터전을 잡은 남편 때문에 또한 발목이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양국을 오가며 애를 태우고 있다. 입양을 아직도 우리 땅에서는 쉬쉬하며 남들 이목을 살피는 것은 내 형제 내 자식이 최고라는 혈육 중심의 문화라 그렇다.

세상은 날로 변한다. 이제 넓은 시야로 편견마저도 끌어안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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