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여섯째 날, 움직이지 않으면 춥다(천안시~광덕면 대평리)

▲ 대평리 가는 길. 너무 한적해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 길 같다.

오래된 건물 등 사소한 물건들이 흥미를 끈다

개를 찾는 전단지…동화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제법 추운 날씨…걷기를 멈추니 한기가 덮친다

 

◇필순이모의 정성이 들어 있는 찐빵

제제의 친구 필순이모는 아침에 떠나는 나를 위해 찐빵과 만두를 한가득 싸주었다. 엄마의 정성과 같았다. 이렇듯 한국 사람들은 손님에게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인심은 아닐 것이다. 길을 걷는 내가 힘겨워 보였을까? 빈손으로 보내지 못하는 이모의 정이 느껴졌다. 찐빵과 만두의 무게로 배낭은 한결 무거웠지만 하루 종일 배고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기분도 좋았다.

천안시를 벗어나 정안면으로 떠나는 날 유난히 다른 날보다 추웠다. 도저히 지금의 옷만으로는 추위를 견디지 못할 것 같아 필순이모가 준 스타킹을 바지 속에 입고 최대한 나를 꽁꽁 여미었다.

어느덧 걷는 것이 익숙해진 일과가 되었다. 길에서 보는 전단지들과 오래된 건물들이 내 흥미를 끄는 물체들이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중 재미있는 전단지를 하나 보게 되었다. 딱히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한 영화가 떠올라 시선을 끌었다. 전단지는 허스키 개를 찾는 내용이었다. 개의 외형을 적고는 ‘12월 19일 집을 나갔습니다. 개가 순해서 사람을 잘 따릅니다’라고 썼다. 무엇보다 큰 글씨로 ‘사례금 100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100만원 이라니! 누군지 몰라도 개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품종이 좋아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개인지, 잃고 싶지 않을 정도로 사랑했던 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12월 19일 집을 나간 허스키는 2월 8일까지도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방학 내내 영화를 달고 살았는데, 그때 보았던 영화 한편이 떠올랐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감독 김성호)이다. 유쾌한 내용이어서 전단지를 보자마자 웃음이 났던 것이다. 물론, 개를 잃은 사람의 심정을 생각하면 속상하겠지만.

영화는 내가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에 개봉했다. 하지만 ‘국제시장’이라는 큰 영화에 묻혀 빛을 보지는 못했다. 안타까운 것이 극장 대기업 3사가 잡고 있는 한국 영화시장은 도저히 흥행요소가 없으면 관객들도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극장을 찾거나 밤 12시가 넘어야 끝날 시간대에 수익성 없는 다양한 영화들을 배치해 놓으니 흥행에 밀린 영화는 보고 싶어도 상영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사람들의 다양한 영화 취향이 존중되기 어려운, 흥행성만을 추구하며 수익만을 창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답답할 뿐이다.

◇성인을 위한 동화 같은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나 역시 이 영화를 인터넷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세 명의 어린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지소와 지석은 정현(강혜정)의 딸과 아들로 나온다. 아빠가 사라지고 엄마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데, 집이 없는 가족은 미니 봉고차에서 잠을 자고 생활한다.

아빠가 사라지면서 집까지 잃게 된 지소와 지석은 불만이 가득하다. 학교를 다니면서 집도 없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어떻게든 미니 봉고차에서 생활하는 것을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던 지소는 결국, 가장 친한 친구 채랑에게 들키고 만다. 친구에게 들키고 둘의 사이는 멀어질 것 같았지만 오히려 지소와 채랑은 더 친해진다. 둘은 생일 파티 때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는 멋진 집을 구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지소는 평당 500만 원 짜리 전셋집 전단지를 발견하고 잃어버린 개에 대한 사례금 500만 원 짜리 전단지도 우연히 보게 된다. 결국 엄마가 임시로 얻게 된 직장 레스토랑 ‘마르셀’의 개 ‘월리’를 훔치기로 한다. 개를 훔치고 주인이 전단지를 붙이면 개를 돌려줘 돈을 받는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계획은 물론 여러 가지 상황들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이 평당 500만 원 이라는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벌어지는 이 스토리는 아이들의 능청맞은 연기와 성인 배우들과의 잘 맞는 호흡으로 유쾌하게 전개된다.

원작 동명 소설 바바라 오코너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괜찮게 영화화 한 이 영화는 성인들을 위한 이솝 우화 같은 느낌이다. 결국 월리를 돌려주고 행복하게 살게 된 지소와 지석이. 그저 동화같은 이야기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어른과 아이들 모두에게 사랑과 우정 등 잔잔한 교훈을 주는 영화다.

천안시에서 대평리까지 가는 길은 굉장히 한적했다. 산등성이 사이로 구불구불 나있는 2차선 국도는 차를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하다. 날씨가 점점 어두워져 무서웠지만 곳곳에 농가들이 보여 안심이 되기도 했다.

오늘은 오송읍 제제에게 가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다. 목적지는 정안면이었지만 날씨가 제법 추운 탓인지 힘들었다. 이 기운으로 도저히 정안면까지 갈수 없을 것 같아 대평리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내일은 서울에 하루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교정 때문에 치과예약이 잡혀있다. 중간에 하루 걷는 일을 중단하는 것이 너무 안일해 보일까? 고민되었지만 나로서는 치과를 가야 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어쩔 수 없다.

치과에 다녀와서 다시 대평리로 돌아와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대평리에서 마중 나오기로 한 아빠를 기다렸다. 길가에 ‘어르신 많은 곳 서행운전 하세요’라는 안전 표지판이 보였다. 대평리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정말 시골이었다. 길은 커다란 스케치북에 산과 들판 사이에 그려진 그림 같았다.

한적한 길가에 있는 대평리 버스정류장에 앉아 아빠를 기다렸다.  더 걸어볼까 했지만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눈까지 내린다는 핑계로 조용하고 사람 없는 버스정류장에 앉아 바라보이는 마을을 감상했다. 움직이지 않으니 몸은 추워지고 스산한 마을 풍경은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눈이 내리는 마을은 삭막해 보였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는 평생 기억할 추억 한 장을 가슴에 찍어 두었다.              글·사진/안채림

(광운대 경영학& 동북아문화산업과 복수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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