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연일 뜨겁게 내리 꽂히는 햇살 아래서 이제 초록의 식물들은 기진맥진 지쳐 버렸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비다운 비를 만나지 못했다.

오월 중순부터 다투어 붉은 자태를 강렬히 뿜으며 담장 위를 장식하던 넝쿨장미도 퇴색하여 빛을 잃은지 오래다.

대가뭄에 온 산야는 목마름에 쩍쩍 갈라지고 훤히 저수지 바닥을 내보이는 곳이 수두룩하다. 농작물들이 바짝 타 들어 간다. 농촌은 가뭄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친한 지인도 특용작물을 심어 놓고 양수기까지 사들고 노심초사하며 도시와 시골을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천재지변을 어찌 인간의 힘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까!

한시라도 하늘이 비를 내려주길 기다릴 뿐이다.

그 옛날 나라의 제왕들은 큰 가뭄이 들면 천제 단에서 기우제를 드리며 간절히 비를 바라며 자신의 부덕함을 고하곤 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중동 호흡기 증후군인 메르스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흉흉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반갑고 기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지난해는 세월호로 인해 온 나라가 슬픔의 바다에 빠지더니, 올해는 메르스라는 바이러스의 사막에 또 갇혀 버렸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 해외 언론은 경제 대국 이미지는 상관없이 미개한 국가로 치부하고 있다. 책임부서의 수장이 어떻게 발 빠르게 결단해야 하는 가를 이번에도 여실하게 보여 준다.

학부시절 ‘우물쭈물하다 ○○할 줄 알았어!’라는 말 잇기 게임을 재미 삼아 동기들과 한 적이 있다.

기상천외한 말이 여기저기서 나와 주위를 날아 다녔다. 재기 발랄한 말이 폭소를 자아냈다. 말놀이 게임을 하며 신랄한 자기 반성과 세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 말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유명한 묘비명이다. 이 작가도 늘 인생의 중요한 길목에서 갈등의 반목에 서 있곤 했나 보다.

어떠한 중대한 사안에 있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을 것이다. 어렵게 답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그것은 기다려 주지 않고 허망하게 그를 지나쳐 가 버렸을 것이다. 생의 끝 죽음의 문턱에서 회한에 젖어도 이미 소용없는 짓이다. 그리하여 그는 아마도 저런 자책하는 말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뭐든 때가 분명히 있다.

신중하게 여러 날을 고민하고 심사숙고해야 할 일들이 있는 반면, 때론 전광석화 같은 촌각을 다투는 사안도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그러하다. 절체절명 위기상황 일 때는 자기 팔다리를 스스로 잘라 내면서라도 목숨을 부지하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어느 고인의 묘비명에 적힌 말이 이렇게 우리들 가까이에서 뼈아픈 교훈을 주는 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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