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중국 무역 프리랜서

살아오면서 누구나 다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때는 6월 요즘 같은 날씨로 기억한다. 필자는 친동생으로부터 유리병에 대한 의뢰를 받고 조사를 하던 중 강소성 서주의 A공장을 선택하고 금형(금속으로 만든 제품 성형을 위한 거푸집)을 만들고 샘플을 받기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계속 핑계를 대면서 샘플을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전화 자체를 받지 않았다. 이 오더는 친동생이 어렵게 만든 오더로 신경이 더 쓰일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일정이 미루어지니 미안하고 답답할 따름이었다. 시간이 더 지체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직접 현장에 가기로 결정을 했다.

필자가 사는 곳에서 서주까지는 버스로 약11시간정도가 걸리는데 밤에 타면 새벽에 도착해서 곧바로 일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밤버스를 타게 되었다. 버스는 2층 침대버스인데 위생이나 편의시설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버스 침대에 누우니까 많은 상념들이 스쳐간다. 난 왜 여기서 중국인들과 함께 이 버스를 타고 있을까? 내일 일은 잘 처리가 될까?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어린 딸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적당한 긴장감은 나의 정신을 깨워 더욱더 정신이 또렸해 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군대에서 행군하기 전 어려움 앞에서 느끼는 묘한 긴장감과 설레임 같은 느낌이었다. 밤을 지나 강소성 서주에 새벽녘에 도착해서 필자는 연락도 없이 공장에 쳐들어갔다.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담당자와 면담을 했다. 담당자는 정말 미안하다. 믿어달라고 했지만 믿음이 안가서 금형을 달라고 했다. 금형비를 이미 지불했기에 달라고 했지만 쉽게 줄 사람들이 아니다. 필자 역시 쉽게 물러설 상황이 아니기에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가서 어렵게 금형을 뺏다시피 얻었다. 그런후 미리 연락해 놓은 다른 B공장으로 금형을 가지고 가서 다시 상담을 시작했다. 엉켜있던 일들이 하나씩 풀리고 일이 비교적 순리적으로 진행되어 갔다. 샘플은 내일까지 만들어 준다하니 오늘은 어쩔수 없이 강소성 서주에서 머물러야 했다. 객실로 들어가 피곤해서 한숨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분명히 전화를 넣지 말라고 했는데 누구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전화가 한 번 더 왔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필자는 짜증섞인 목소리를 “웨이” 그런데 상대방이 “여보세요”라고 하는 거다. 이 먼 중국에서 한국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이곳 강소성 서주에서 한국말이라니 너무 황당했다. 필자의 객실에서 대화를 해보니 이분은 다름 아닌 필자의 중학교 선배였다.

필자는 조치원이라는 조그마한 동네에 살았는데 십여년의 서울생활에서도 동향사람을 만난적이 없었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더 신기한 것은 필자부모님의 가게와 선배님의 체육관의 거리는 약 200미터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향에서는 한번도 뵌적이 없는 선배님을 중국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는 곳에서 보다니….

얘기를 해보니 선배님은 강소성 서주에 농산물 때문에 와 있는데 한국 사람들도 없고 너무 심심해 하던 차에 프론트 에서 한국사람 왔다고 해서 너무 반가워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먼 타국에서 고향의 골목 골목을 떠올리며 고향을 추억했다.타지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소외감과 외로움을 잠시 잊고 고향 선배님과의 만남은 평생 잊지 못할 가장 특별한 만남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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