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가

기원전 110년 한(漢)나라 무제(武帝) 시절, 동방삭(東方朔)이라는 자는 궁중에서 문서를 담당하는 중간관리였다. 하루는 무제에게 장편의 상소문을 올렸는데 제도 개혁에 관한 내용과 황제의 치적에 대한 아부가 적절히 조화를 이뤄 아주 읽기 좋은 문장이었다. 무제가 그 글에 매료되어 붓으로 표시해가며 두 달에 걸쳐 꼼꼼하게 다 읽었다. 그런 인연으로 동방삭은 무제의 눈에 들어 황제를 가까이서 보좌하는 시종(侍從)에 임명되었다. 하루아침에 출세를 하였으니 조정 대신들과 여러 선비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사가 되고 만 것이었다.

무제는 동방삭을 무척 좋아해서 자주 식사를 함께 했는데, 동방삭은 식사를 마치고나면 언제나 먹다 남은 고기를 옷소매에 넣어가지고 나왔다. 옷소매가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궁중의 관리들과 시녀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하였다. 그뿐 아니었다. 무제가 총애하여 개인적으로 비단을 하사하면, 그는 그것을 어깨에 메고 보라는 듯이 궁궐을 나갔다. 또 황제로부터 돈을 하사 받으면 술집에 가서 미녀를 꼬드겨 아내로 맞아들이는데 쓰곤 했다. 하지만 한 여자와 1년을 같이 살지 못하고 매년 새 아내를 얻었다. 모두 술집에 있던 여자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고 미치광이라고 불렀다.

무제가 신하들의 업무 보고를 받을 때면 언제나 이렇게 평가했다.

“일이 그 정도라면 차라리 동방삭에게 맡기면 훨씬 잘하겠다!”

하지만 동방삭은 무제가 다른 신하의 일을 맡기면 결코 맡지 않았다. 이러저런 핑계를 대고 자신은 능력이 없다며 회피했다. 그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한 신하가 동방삭에게 물었다.

“왜 황제가 다른 신하의 일을 맡기면 못한다고 하시는 겁니까? 예전 재상들은 모두 황제의 총애를 받아 후세에 이름을 남겼는데, 선생처럼 학문과 식견이 뛰어난 분이 기이한 방식으로 살며 승진에는 신경도 쓰지 않으니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이에 동방삭은 아주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대는 그 이치를 모르는 것 같소. 예전 재상들이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벼슬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요. 자고로 천하가 어지럽지 않다면 비록 성인이라 한들 그 재주를 펼칠 길이 없을 것이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아무리 현자라 해도 공을 세울 길이 없는 법이요. 태평스러운 시절에 누가 큰 인물을 바라겠소? 튀어나온 못이면 먼저 두들겨 맞을 뿐이요.”

한번은 종묘 제사 때면 황제가 신하들에게 고기를 선물로 나누어주는데 모두들 황제의 명이 떨어져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동방삭은 명을 받지도 않고 먼저 고기를 베어 갔다. 무제가 무례하다며 야단을 치자 동방삭이 말했다.

“어차피 주실 고기인데 명을 기다리지 않았다고 어찌 무례하겠습니까? 신하가 알아서 칼로 고기를 베어가니 잘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베어 가되 많이 베어가지 않으니 어찌 청렴하지 않겠습니까? 집에 가서 아내에게 주었으니 어찌 어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한서(漢書)’ 동방삭전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후에 시인 두보는 동방삭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동방삭이 황제에게 실없는 농담을 하며 고기를 베어 가던 일이 떠오르는구나.”

도광인생(韜光人生)이란 빛을 감추어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다. 자신의 재능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자는 모호하고 모호하지만 인생이 분명하다. 기회를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 자신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총리로 발탁되어 인사청문회에 서게 되었다. 분명히 여러 사람이 손사래를 치며 고사한 자리일 텐데 당당히 나섰으니 누구보다 인생이 결백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과연 자신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때인지, 또는 출세가도를 달리는 인생이라 행여 겸손함을 잃은 것은 아닌지, 청문회장에서 어떤 말들이 오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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