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가

기원전 350년 전국시대 무렵, 감무(甘茂)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진(秦)나라의 상국(相國) 벼슬에 올랐다. 비천한 집안 출신으로서 입신출세의 최정상에 선 것이었다. 권세를 쥐게 되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의 인사를 받았고, 그날 이후로 매일 아침이면 찾아오는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였다. 어느 날부터 감무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왕이 뜻하지 않게 지금으로 치면 대령급인 대량조(大良造)의 벼슬에 있던 공손연(公孫衍)이라는 자를 갑자기 신임하게 되어 파격적으로 참모총장에 중용한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를 왕 가까이 두고 상국인 감무는 멀리하기 시작했다. 더욱 더 충격적인 사실은 왕은 이미 감무에게 마음이 떠나 공손연을 다음 상국으로 염두 해두고 있다는 소문이 조정에 은밀히 퍼져있었다.

생각할수록 감무는 울화가 치밀었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모와 역경을 견뎌야 했는지,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결코 쉽게 물러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밤새도록 지혜를 짜내느라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겼다. 전전긍긍하다 결국 새벽녘에야 묘책을 찾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왕에게 다시 신임을 받으려면 공손연의 허물을 들추는 방법밖에 없었다.

동이 트자 감무는 피곤한 것도 아랑곳 않고 서둘러 의관을 갖추어 이내 궁궐로 향했다. 왕이 말했다.

“무슨 일로 이른 아침부터 날 찾아온 것이요?”

그러자 감무가 대답했다.

“대왕께서 능력 있는 상국을 발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오니 모쪼록 소인에게도 축하할 기회를 주시옵소서!”

이 말을 들은 왕은 그만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아니, 도대체 어느 누가 그런 망언을 함부로 내뱉고 다닌단 말이오?”

그러면서 왕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감무 이 사람이 어떻게 내 속을 알았을까?’

하고는 왕은 다시 서둘러 말을 돌렸다.

“내가 국정을 그대에게 모두 맡기지 않았소? 그런데 왜 또 다른 상국이 필요하단 말이오?”

그러자 감무가 작심한 듯이 무례하게도 왕께 따져 물었다.

“대왕께서는 공손연을 상국으로 임명하실 생각이 아니십니까?”

그 말에 찔끔 놀란 왕이 되물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유언비어를 들은 것이요?”

감무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마치 어이가 없어 혼잣말하듯이, 하지만 왕이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거참! 공손연 그 자가 자신의 입으로 내게 한 말인데…….”

그 말을 들은 왕은 속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공손연, 그렇게 안 봤는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인간이군!’

얼마 후 공손연은 나라에서 추방되었다. 왕은 감무가 중얼거리는 말을 진짜로 믿었기 때문에 공손연을 가벼운 자로 여겨 내친 것이었다. 다시 감무를 신임하여 이전보다 더욱 가까이 두어 국정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허실상란(虛實相亂)이란 가짜와 진짜를 분간하지 못하게 혼란시킨다, 또는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언제나 사실로 받아들일 때, 슬며시 거짓을 섞어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러니 위태로울 때를 대비하여 평소에 신망(信望)을 쌓아두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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