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유비(劉備)는 소패성 싸움에서 여포(呂布)에게 패하여 앞날이 막막했다. 하는 수 없이 조조(曹操)를 찾아가 의지하였다. 그러자 조조의 부하 정욱(程昱)이 말했다.

“유비는 큰 뜻을 품은 자입니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화근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또 다른 부하 곽가(郭嘉)가 반대하며 말했다.

“의지해 온 자를 죽인다면 이는 승상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천하통일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조조는 곽가의 말에 따라 유비를 허창(許昌)에 거하게 하였다. 유비는 그곳에서 집 뒤 채소밭을 손수 일구며 조용히 지냈다. 어느 비오는 날, 조조가 유비를 술자리에 초대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조조가 물었다.

“용은 뜻을 펼치면 단숨에 하늘을 날아오른다고 하오. 그대 생각에 지금 천하에 용과 같은 인물이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겠소?”

유비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원술, 원소, 유표 등을 꼽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조조가 껄껄 웃으며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대저 영웅이란 가슴에 큰 뜻을 품고 뱃속에 지혜와 모략을 감추고 있는 자이며, 우주의 기밀을 품고 있다가 천지로 토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소?”

유비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자가 대체 누구입니까?”

조조는 손가락으로 유비를 가리킨 다음, 이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천하에 영웅이라고 하면 그대와 나 둘뿐이지요!”

그 순간 유비는 깜짝 놀랐다. 이와 동시에 마침 하늘에서 천둥이 꽈꽝, 무섭게 몰아쳤다. 유비는 그만 손에 들고 있던 수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조조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아니, 수저는 왜 떨어뜨리는 것이오?” 유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천둥소리만 들으면 무서워 떨었습니다. 그래서 그만…….”

조조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천둥 번개야 음양이 부딪쳐 나는 소리인데 무얼 그리 두려워한단 말이오?”

이날 이후 조조는 유비를 보잘 것 없는 위인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듬해 원술(袁術)이 옥새를 구해 형 원소(袁紹)가 곧 황제에 오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유비는 이 기회를 이용해 조조로부터 탈출할 생각을 하였다. 조조에게 말했다.

“원술이 원소를 찾아가려면 반드시 서주를 지나갈 것입니다. 제게 군대를 주시면 원술을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이에 조조는 유비에게 군사 5만을 주어 출정을 허락했다. 유비는 군사를 얻자 그날 밤 서둘러 허창을 떠났다. 관우와 장비가 왜 이렇듯 서둘러 떠나느냐 묻자 유비가 대답했다.

“이번 출정은 잡힌 물고기가 바다로 나가고 갇힌 새가 푸른 하늘로 날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내가 어찌 서둘러 나아가지 않겠는가?”

이때 정욱과 곽가 두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조조에게 달려와 간했다.

“지금 유비에게 군대를 맡긴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오니 속히 취소해주십시오!”

조조가 급히 사람을 보내 철군을 명하였지만, 유비는 듣지 않았다. 이를 기회로 유비는 훗날 삼국시대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이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있는 고사다. 대용약겁(大勇若怯)이란 큰 용기는 겁쟁이처럼 보이고 뛰어난 자는 마치 졸렬하듯 보인다는 말이다. 작금에 도백(道伯)을 지냈던 자가 재상 자리에 올라 도리어 화를 당하고 있다니,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처신이로다. 용은 승천할 때까지 참고 조용히 숨어있는 법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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