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당(唐)나라 무렵에 지금의 도지사(道知事)에 해당되는 현령(縣令) 하나가 욕심이 아주 많았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에게는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거둬들였고, 유력 기업가와 중소 사업가에게는 지방 건설을 위한답시고 수억에서 수천만냥씩 뇌물을 받아 챙겼다. 결국 이런 횡포를 견디다 못한 어느 사업가가 현령에게 고발장을 상소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런데 고발장에는 현령이 돈 받아 처먹은 내용은 하나도 없고, 모두 그 아래 관리들의 부정부패만 자세히 열거되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부지사, 기획실장, 행정국장, 복지국장, 경제국장, 농정국장, 건설국장, 문화국장, 등등이 언제 어디서 얼마를 받아 챙겼다고 세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고발장을 읽어 본 현령은 그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카락이 쭈삣 서는 두려움에 손이 떨렸다. 이내 읽던 고발장을 내려놓고 붓을 들어 글귀를 하나 적었다. 

“여수타초 오이경사(汝雖打草 吾已驚蛇), 너는 비록 풀밭을 건드렸지만 나는 이미 놀란 뱀과 같도다!”

현령이 벌벌 떤 이유는 고발장의 내용이 비록 관리들의 부정비리를 적어 놓은 것이었지만 이는 알고 보면 우회적으로 현령의 죄상을 낱낱이 밝힌 것이기 때문이었다. 현령은 행여 이 상소가 중앙에 보고되는 날에는 자신의 목이 달아나고 가문이 멸족하는 일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다행히 상소한 자가 자결하여 한시름 놓게 되었다. 이어 밑에 관리들을 불러 명하였다.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앞으로 관리들은 각별히 처신을 잘하도록 하라.”

얼마 후 이 사건은 죽은 자가 제멋대로 작당한 일이라 판결해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이후 현령은 감히 떨리고 두려워 백성들에게서 갈취와 수탈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밑에 관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현령은 혹시라도 또 다른 사업가가 자신의 비리를 세상에 폭로할 것이 두려워 날마다 좌불안석으로 지내야 했다.

이 이야기는 당(唐)나라 때 학자인 단성식(段成式)의 수필집 ‘유양잡조(酉陽雜俎)’에 실린 내용이다. 타초경사(打草驚蛇)란 풀을 두드려 숨어 있는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징계해 큰 것을 깨우치게 한다는 의미이다. 또는 변죽을 울려 적의 정체를 드러나게 하거나, 공연히 문제를 일으켜 화를 자초함을 비유하기도 한다.

지난 주 국내 굴지의 사업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운한 일이 있었다. 그는 극단의 선택을 하기 전에 한 언론사를 통해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정치자금 관련 증거를 모조리 폭로하고 말았다. 더구나 그 목록에 국가 최고직위에 있는 자들이 죄다 관련 있다고 밝혀 세간에 화제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그가 죽기를 각오하고 밝힌 것이니 어찌 감히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느냐. 또는 정치인에게 배신을 당해 그 억울함으로 관련 없는 고위층을 흠집내려한 의도라고 설왕설래한다.

사업가와 정치인은 공생 관계이다. 뒤를 봐주고 일감을 몰아주는 식이다. 이는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사업가에게 정치자금이란 위급할 때를 대비한 보험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막상 사업이 어렵게 되자 관련 정치인들이 모두 모르쇠로 돌변하고 말았으니 그 억울함이 어찌 없겠는가? 해당 정치인은 자신과 추호도 관련 없는 음해라고 주장하지만, 오죽 처신을 못했으면 그런 목록에 이름이 실린 것이지 스스로 깊이 반성할 일이다.

이 사건의 결말은 불 보듯 뻔하다. 당나라 때 생긴 일과 지금의 일이 어쩌면 처음과 끝이 그리도 닮은 것인지, 당한 백성만 억울하다고 여기기에는 왠지 분노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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