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충북예술고 교사

동양학문에 발을 들여놓으면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주역입니다. 옛 글을 읽다 보면 한 장 건너 한 번씩 나오는 것이 주역입니다. 그런데 주역을 좀 공부하자고 하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주역에 대해 친절하게 정리해놓은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 불친절과 몰상식에 나중에는 화가 치밉니다. 이렇게 꼭지가 돌 무렵에 우연히 서점에서 만난 책이 이 책입니다.

주역은 원래 문자가 없던 시절에 복희가 괘를 그려서 만들었고, 그것을 처음 문자로 옮긴 것은 주나라 문왕이었습니다. 주나라 때는 문자가 생긴 시절이었죠. 그리고 그 후에 공자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주역을 죽간으로 정리합니다. 원래 점복서였던 주역을 이나마 글로 정리한 것이 다행이죠. 그런데 그 후에 주역이 동양사상의 뿌리로 이해되면서도 주역에 대한 정리는 좀처럼 되지 않아서 오늘날까지도 공자가 정리한 그 책을 사람들이 들여다봅니다. 참 기가 찰 노릇입니다.

사실은 이 지경이라면 지난 5천년간 사람들이 주역에 속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역 속에 답이 있다고 믿는 것과는 달리 답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답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뜻이죠.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답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문제는 답이 있다는 전제 하에 지난 세월 동양학문이 그 위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주역입니다.

이 책은 노인과 학생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학생이 묻고 노인이 대답하는 방식이죠. 그래서 주역의 가장 기본이 되는 괘 긋기부터 음양과 오행, 나아가 하도와 낙서를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그래서 처음 주역에 입문하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다만 뒤쪽으로 가면 견강부회한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그것도 1960년대에 나온 책임을 감안한다면 옛 사람들의 애교라고 생각해도 될 일입니다.

이 책을 읽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차에 최근에 다음 책을 우연히 서점에서 접하고는 주역에 대한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주역을 점책으로 보면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주역을 문자로 정리한 시대의 사회상황을 잘 이해하면 주역에 대한 고민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상을 반영한 도덕책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무렵의 정황으로 주역을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에 주역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고민은 우선 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그렇게 보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내용이 주역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니 다음 책도 한 번 읽어볼 만합니다. 정말 많은 복잡한 생각이 정리됩니다.

현대 물리학과 과학이 이루어놓은 성과로 보면 주역을 통해서 동양의 옛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소박한 관찰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런 관찰을 토대로 세상을 보아왔다는 점에서 동양으로 들어갈 때는 꼭 통과해야 할 책이기도 합니다. 옛날처럼 주역을 연구하는 일이 일생을 걸 작업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옛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알아야 할 내용입니다. 특히 동양철학의 영향이 강하게 남은 실용학문인 한의학을 하려면 송대에 형성된 주역 이론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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