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충북대학교 겸임교수

“아무래도 이 어금니는 뽑아야겠습니다. 이렇게 금이 갔으니 찬 물을 마시면 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 기회에 이 어금니를 뽑고 임프란트를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의사선생은 금방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가 시린지는 벌써 서너 달은 된 것 같다. 당초에는 그리 심하지 않아 그럭저럭 참을 만 했다. 그런데 어제 밤부터는 통증이 심하여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우선 급한 대로 집에 있는 진통제를 먹어 보았지만 그 역시 잠시 뿐, 통증은 밤새도록 나를 괴롭혔다.

통증으로 잠도 못자고 괜스레 이방 저방 들락거리자 아내가 한마디 한다. “그것 보세요. 더 아프시기 전에 치과에 다녀오시는 것이 좋겠다고 노래를 했건만 이젠 별 수가 없네요. 날이 새면 치과를 가는 수밖에.”

의사선생의 처방대로 이를 뽑고 보니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시원하다’는 속담이 저절로 이해가 된다. 그런데 몇시간 후 진통제의 약효가 끝나자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하였다.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먹었지만 그 때뿐이다. 다시 밤새도록 ‘끙끙’거리며 앓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새벽에 일어났다. 이번에는 오한으로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하였다. 겨울이불을 덮고 온돌침대의 온도를 높여 보았지만 오한은 한 동안 내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잠시 눈을 붙이니 오한은 좀 진정됐다. 마침 강의가 있는 날이라 강의준비를 마치고 시간을 보니 병원을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듯하였다. 잠시 망설이다 있는 약을 먹고 강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고열로 혼미한 상태에서 집 근처에 있는 병원에 갔다. 체온계를 본 의사선생이 깜짝 놀란다. “열이 이렇게 높은데 지금까지 참고 계셨다고요? 우선 주사 한 대 놓아 드리고 약을 처방할 테니 댁에 가셔서 무조건 푹 쉬세요. 요사이 유행하는 독감입니다.”

어금니 하나 뺀 것으로 몸이 약해져서 독감에 걸린 것인지, 아니면 유행에 내가 너무 민감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 거의 일주일 동안 집에서 앓았다.

“여보, 이젠 당신도 나이가 드셨나 봐요. 독감 하나를 이기지 못하니… 하기야 60년을 쓰셨으니 오래 쓰셨지.”

아내는 약을 챙겨주며 안쓰러운 듯 나를 바라본다.

“여보, 당신 말이 맞소. 내가 당신에게 하려고 했던 말인데 당신이 먼저 하는구려. 일주일 동안 집에서 쉬면서 많은 생각을 했소. 우선 내 몸의 건강상태를 생각해 보았소. 그리고 앞으로 중한 병이 걸릴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도. 또 지금이야 당신이 옆에서 간호를 해 주지만 만약에 당신이 없다면 나를 누가 간호를 해 줄 것인가도 우리 둘이 같은 날 함께 하나님께로 가면 좋겠지만 그건 우리의 욕심 일게고.”

갑자기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하던 말을 멈추고 옆에 있는 아내를 보니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여보, 너무 슬퍼말아요. 지금 당장의 일은 아니요. 언젠가는 우리가 부딪힐 일들이라는 것이지. 그러나 우리가 준비는 해야 할 일이요” 내 말이 끝나자 결국 아내의 얼굴에는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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