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충북대학교 겸임교수

토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거실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으려니 졸음이 살살 온다. 따스한 봄볕이 어느 사이 잠까지 몰고 온 것이다.

“여보! 피곤하시면 잠시 눈을 붙이세요. 꼬박 꼬박 조는 모습을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어쩜 조는 모습까지도 아버님을 꼭 닮으셨는지….”

아내의 기척에 놀라 정신을 차리고 신문을 보려고 노력하지만 눈꺼풀의 무게는 이미 천근만근이다.

“여보, 봄이 벌써 왔는가 봐요. 춘곤증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신문을 볼 수가 없네. 잠시 소파에서 눈을 붙여야 할 것 같아요.”하며 신문을 옆으로 밀어 놓고 소파에 누우니 아내는 가벼운 담요를 가져다 덮어준다.

나는 지금 터키의 꼬냐평야를 달리고 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앞쪽과 양옆을 수시로 두리번거려 보지만 오직 초록의 지평선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이따금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하얀 꽃들을 본다. 벚꽃 같기도 하고 살구꽃 같기도 한데 차의 달리는 속도로 인해 정확히 구별할 수가 없다.

“야아! 참 넓다. 가도 가도 끝이 없네” 조금 전까지 정신없이 주무시던 일행 중 한 분이 잠에서 깨셨는지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

수천년 전에 건축했다는 거대한 신전이며, 원형극장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우리가 지금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지금의 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운 건축물들을 어떻게 저리도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보고 또 보아도 신기하기만 하다.

몇 개의 돌기둥이 길게 서 있는 어느 신전마당에 잠시 앉아 본다. 수천년 전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들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는 가이드 선생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보게들! 당신들은 참 이상들 하구만. 날마다 바빠서 죽겠다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수 천 년 전의 시간을 쫓아서 그리도 한가하게 돌아다니나? 당신들은 오직 미래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나저나 당신 때문에 아까부터 햇볕이 가리니 다른 곳으로 좀 옮겨 주겠나.”

언제 나타나셨는지 나체의 디오게네스가 나를 보면 한 마디 하신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만 봄볕이 좋아서 제가 선생님이 거기 계신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일어나 자리를 피하려는데 웬일인지 다리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다시 힘껏 힘을 주어 일어나려 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오히려 나는 돌기둥에 더 단단히 붙어지고 있었다.

“여보, 여보, 이제 일어나세요. 낮잠을 주무시다 무슨 꿈을 꾸시는지 그렇게 몸부림까지 치세요. 당신도 이번 성지순례로 인해 몸이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하기야 봄을 두 번씩 맞이하셨으니 나이도 두 살이나 더 드셨을 거고” 아직도 아내의 말이 꼭 꿈결같이 들리는 것을 보니 봄은 봄인가 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