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조조(晁錯)는 한(漢)나라 사람이다. 학식이 뛰어났고 성격이 강직하여 효문제(孝文帝) 때 태자의 지도교수인 가령(家令)의 지위에 있었다. 이때 태자는 조조를 총애했고 깊이 신뢰했다. 더구나 법령 개정안과 정책 제안을 잘하자 황제는 그를 비서인 중대부(中大夫)로 승진시켰다.

얼마 후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곧 효경제(孝景帝)이다. 경제는 즉각 조조를 비서실 정책수석인 내사(內史)에 임명하였다. 이때부터 조조는 황제와 독대하면서 정치에 관한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럴 때마다 황제는 그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얼마 후 조조가 어사대부에 오르자 일대 개혁안을 발의했다. 각 지역 제후들의 영토를 삭감하고 군대를 몰수하자는 실로 어마어마한 법령이었다. 황제는 모든 신하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다. 아무도 감히 반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지역의 제후들은 그 개혁안에 결사반대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의 부친이 급히 시골에서 올라와 조조에게 말했다.

“너는 어찌 그런 위험한 법령을 개정하여 사람들에게 원망을 듣는 것이냐?”

조조가 말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법령을 개정하지 않으면 천자는 존귀해질 수 없으며 종묘는 편안해질 수 없습니다.”

부친이 말했다.

“황제인 유씨는 편안할지 모르지만 우리 조씨는 이제 위태로워졌다. 집안에 재앙이 미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내 먼저 죽어야겠다.”

조조의 부친은 고향에 내려가자마자 화가 두려워 자결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나자, 오나라와 초나라 등 7개 지역에서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황제는 너무도 놀라 반란군을 저지하기 위한 신하들의 의견을 듣게 되었다. 이에 이전의 재상 원앙이 황제와 독대하여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어사대부 조조를 처벌하는 것만이 이 반란을 평정할 수 있는 길입니다.”

황제는 고민스러웠다.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신하를 죽여야 한다니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후들의 반란이 점점 커져가자 어쩔 수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명을 내렸다.

“조조를 참수하라!”

조조는 그날 일정대로 궁궐 동쪽 현장 시찰을 나갔다. 그러나 수행원으로 변장한 형리들에게 체포되어 단칼에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조조가 죽자 반란 또한 즉각 중지되었다. 

며칠 후 신하 등공(鄧公)이 이 기회를 노려 황제께 아뢰었다.

“조조는 제후들이 강성해지면 중앙에서 제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영토 삭감을 주장한 것입니다. 이것은 황실이 만세에까지 이르는 큰 이익입니다. 그러나 계획이 시행되기도 전에 주장한 자가 사형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안으로 충신의 입을 막고, 밖으로 제후의 원수를 갚아준 격입니다. 소신이 생각하기에 폐하께서는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경제가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대 말이 맞소. 나 또한 크게 후회하고 있소.”

해현경장(解弦更張)이란 느슨한 거문고 줄을 긴장되게 팽팽히 맨다는 뜻이다. 사회적(社會的), 정치적(政治的)으로 제도(制度)를 개혁(改革)하는 것을 말한다. 팽팽하면 스스로 끊어지기 쉬운 것이다. 그러니 나라를 변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그래도 우리 사회는 개혁이 필요한 곳이 너무도 많은데, 아무도 총대를 메려하지 않는다. 장관과 국회의원은 무슨 일을 하는 자들인지 가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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