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한비자(韓非子)는 선천적으로 말더듬이여서 변론에는 아주 서툴렀다. 하지만 문장에는 뛰어나 여러 저술을 남겼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 벼슬이나 부를 얻는 유세(遊說)에 관한 지침서 ‘세난(說難)’편은 지금까지도 출세학(出世學)의 교과서로 알려져 있다. 

춘추시대 위(衛)나라 영공(靈公)은 미자하(彌子瑕)라는 젊은 신하를 남달리 총애했다. 그건 미자하가 학문이 깊거나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왕의 마음을 잘 헤아려 달콤한 말을 할 줄 알았고, 잘 생긴 외모로 늘 왕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위나라 국법에는 군주의 수레를 훔쳐 타는 자는 발꿈치를 자르는 월형에 처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누군가 찾아와서 미자하의 모친이 병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소식을 들은 미자하는 급한 마음에 군명(君命)을 사칭해 군주의 수레를 타고 모친에게 단숨에 달려갔다.

나중에 영공이 이 일을 알게 됐다. 하지만 처벌하기는커녕 오히려 미자하를 칭찬했다.

“그대는 참으로 효자로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월형도 무서워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또 한번은 미자하가 영공을 따라 과수원에 놀러 갔었다. 그곳에서 미자하가 복숭아를 하나 따서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맛이 참으로 달았다. 그 먹던 것을 영공에게 바쳤다. 그러자 영공은 무엄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가상하다고 여겨 이렇게 말했다.

“미자하는 참으로 나를 위하는 자로다. 제 입맛을 참고 나를 생각하니 말이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미자하의 외모가 쇠약해지면서 멀리 변방의 벼슬자리로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아주 사소한 일로 미자하가 죄인이 되어 영공 앞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미자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왕께서 이전에 나를 얼마나 총애했던가. 결코 나를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영공은 미자하를 보더니 대뜸 인상을 쓰면서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저 놈은 본디 고약한 놈이다. 이전에 군명을 사칭해 내 수레를 훔쳐 탄 적이 있고, 또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권했던 아주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다. 저 무례한 놈을 당장 끌어내 목을 베어라!”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전에 왕을 위해 현명하다고 여긴 일이 후에는 죄를 진 것이 됐다. 그것은 군주가 총애하는 마음이 다해 미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말한다.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에는 어떤 말을 해도 군주의 마음에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군주에게 미움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훌륭한 지혜를 말해도 도리어 군주를 노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유세하는 자는 군주의 애증을 살펴보고 난 후에 말해야만 한다. 아무리 사나운 용(龍)이라 해도 잘 길들이면 그 등에 올라탈 수가 있다. 그러나 용에게는 그 목덜미 아래 한 자 길이의 거꾸로 난 비늘, 역린(逆鱗)이 있는데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는 누구나 이 역린이 있다. 유세에 성공하고도 이것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는 오래도록 총애를 잃지 않을 것이다.”

여도지죄(餘桃之罪)란 자신이 베어 먹은 복숭아를 남에게 권한 죄를 말한다. 여도담군이라고도 한다. 이는 지나친 총애가 도리어 큰 죄의 원인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처음에 사랑 받았던 것이 나중에는 화근(禍根)이 됨을 이르는 처세의 경구이다.

아름다운 꽃도 때가 되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남녀의 사랑도, 직장에서의 신임도, 왕의 총애도 때가 되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지혜로운 자는 미움을 받기 전에 스스로 물러서는 자일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