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충북예술고 교사

인류가 문학이라는 행위를 갈래로 나누는 방법은 이미 그리스 때에 확립됐습니다. 플라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이미 자세하게 정리해놓았죠. 문학의 갈래는 크게 3가지입니다. 시, 희곡, 수필이 그것입니다. 소설이 있습니다만, 소설은 근래에 나온 갈래이고, 그 전에는 서사시였는데, 서사가 있다고 해도 시는 시여서 시로 분류합니다.

이 세 갈래론은 인류의 역시 이래 크게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학교의 문학 수업 때 배웠습니다.(소설이 추가된 채) 그런데 인류 문문학사 상 이 3갈래론을 깬 4갈래 이론이 우리나라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위의 책이 그것입니다. 조동일은 문학의 특성을 자세히 관찰한 끝에 4갈래로 나누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고, 그것은 불과 20년만에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져서 지금은 중고등학교에서 거의 이렇게 배웁니다. 특히 고등학교 문학시간에는 조동일이 처음 이 갈래론을 제기하면서 쓴 용어를 그대로 씁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서정, 서사, 극, 교술. 이렇게 나누는 기준이 중요합니다. 문학은 사람이 감정을 담아내는 방식인데, 사람의 감정은 세상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교감의 방식을 관찰한 것입니다. 크게 줄거리가 없는 것과 줄거리가 있는 것으로 나눈 다음 그것들의 특징이 서로 상반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서정과 교술은 줄거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아와 세계가 어떤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아가 세계를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것이 서정인 시이고, 자아가 세계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 교술입니다. 이것을 어렵게 세계의 자아화, 자아의 세계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서사와 극은 줄거리가 있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다르죠. 말하는 이가 드러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서사와 극으로 나뉩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이 있느냐 없느냐 라고 표현합니다.

인류의 사고방식을 드러낸 문학론에서 수천년 이어져온 관행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새로운 관점을 찾아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관점을 찾아내기 위해서 학자들이 죽도록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어져온 문화가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는데, 거기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낸다는 것은 학자의 운명이면서 영광이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을 마주친다는 것은 하늘이 낸 축복이죠.

그런 점에서 조동일은 참 대단한 행운을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사람입니다. 문학연구의 이정표를 세운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놀랍니다. 이 새로운 갈래론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처음입니다.

아울러 조동일의 업적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국문학통사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올 무렵에는 제가 가난한 대학생이어서 돈이 쪼들릴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책이 나오자마자 이건 사야 한다고 생각해 초판을 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후로 개정판이 몇차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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