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전쟁의 참상과 더불어 일본이 수탈해간 온갖 물자들의 궁핍을 알기에 무조건 근검과 절약만이 살길이라는 삶의 신조가 온몸에 구석구석 배어 있다.

모든 것이 폐허였던 도시를 재건 한 것도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근면이 바탕이었으며, 그 부지런함과 성실이 우리나라를 경제 대국으로 오늘날 우뚝 세웠다는 것을 무시해선 안 된다.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일본 강점기에서 독립한지도 올해로 벌써 70주년이다. 모 정규방송에서 특집으로, 지난 세대의 ‘생의 자화상’을 여과 없이 화면으로 보여 주는데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전후세대인 나였지만 순박하고 가난한 내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과 아버지 어머니 모습에 가슴이 아리다.

요즘 한국 경제가 IMF때보다 더 어렵다. 마음이 피폐해지니 여기저기서 흉흉한 사건 사고들이 어느 해보다 많이 들려온다. 가난했지만 이웃을 돌아보고 따뜻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우리의 기본적인 공통 심리일 것이다.

문화전반에 걸쳐 복고바람이 강하다.

유행은 30년마다 다시 회귀하는 것이 보편적인 주기라고 한다. 영화관에도 지난 시절의 이야기가 스크린을 장악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본인들의 삶은 뒤로 한 채 오로지 가족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의 이야기들이 대세다.

C는 관객 수가 벌써 1천300만이 넘었다는 현대사를 다룬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휴일을 이용해 팔순노모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C의 효도는 평소에 봐도 별거 없이 평범하다. 가까이 살면서 수시로 부모님 집을 방문해 얼굴을 보여 주는 것이 대부분이며, 날이 좋은날은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과 함께 들길을 걸으며 운동을 하고, 근처 칼국수 집이나 짜장면 집에 들려 국수 한 그릇을 사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고작이다.

그렇게 평범한 그의 행동이지만, 지켜보는 이의 눈에는 C는 분명 효자임에 틀림없다. 팔십 중반의 노모와 육십이 다된 아들인 두 모자가 영화관을 찾게 된 것은 C가 한국전쟁과 월남전, 그리고 파독 광부와 간호사 이야기, 중동 해외근로자 파견 같은, 지난 현대사의 이야기를 어머니와 함께 관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 시대의 한가운데를 극명하게 지나온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원구조로 전개되며,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게 된 이야기들을 담은 장대한 우리나라 현대사의 이야기다.

그 많은 이야기를 고작 두어 시간에 다 담는다는 것은 감독의 무리한 욕심이었지만, 그 저변에 깔린 메시지만큼은 분명 전달된다.

안방극장에서만 있던 팔순의 노인이 극장에 나들이 나온 것은 참 오래간만일 것이다. 당연히 인지능력이 떨어지지만, 그 영화관 나들이만으로도 보약 한재 먹은 것 같은 효과의 기분 좋은 에너지를 얻었을 것이다.

그 어머니에게 젊은 아이들이 필수로 챙겨 영화관에 들고 들어가는 팝콘과 콜라를 C도 사 드렸다. 영화 보는 내내 노모는 그것을 오물거리며 드시고 나중에 남은 것을 챙겨 집으로 가지고 가기까지 했다. 이 풍경이야말로 순박하고 따뜻한 두 모자의 현대사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